400야드 장타 앞세운 디섐보, 새로운 ‘게임 체인저’
기술의 발전이 ‘골프 본질’ 훼손한다는 목소리 커져

사상 첫 11월의 마스터스가 막을 올렸다. 마스터스는 매년 4월에 열렸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연기됐다. 진달래, 철쭉,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의 화려함 대신 곱게 물든 파스텔 톤의 단풍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가을의 마스터스는 장타자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기온이 봄보다 낮기 때문에 공의 비거리가 줄고, 페어웨이가 부드러워 착지 후 굴러가는 거리가 감소한다. 더구나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은 러프를 길게 기르지 않는 덕에 장타자들이 마음 놓고 때릴 수 있는 곳이다.

 ‘괴력의 장타자’로 변신한 브라이슨 디섐보가 마스터스 첫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을 풀고 있다./오거스타내셔널
‘괴력의 장타자’로 변신한 브라이슨 디섐보가 마스터스 첫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을 풀고 있다./오거스타내셔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선은 올해 ‘장타 혁명’을 촉발시킨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게 쏠린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몸집을 20kg 가량 불리며 비거리를 확 늘렸다. 최근 350야드(320m) 이상을 거뜬히 날리며, 400야드 가까이 때릴 때도 있다.

디섐보의 전략은 단순하다. 일단 멀리 때려 벙커 등 장애물을 무력화시킨 뒤 쇼트 아이언이나 웨지로 그린을 공략한다. 그는 9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윙드풋에서 열린 US오픈에서 한 차원 높은 초장타를 날리며 우승했다. 그는 골프 전략에 대한 선수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는 등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고 있다.

일찌감치 장타 전쟁에 불을 당긴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23년 전인 1997년, 우즈는 마스터스에서 평균 323야드를 날렸다. 다른 선수들보다 23야드 이상 멀리 보낸 우즈는 2위를 무려 1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우즈 혼자 차원이 다른 게임을 한 것이다. 오거스타내셔널은 2002년과 2006년 코스 길이를 늘리며 맞섰다.

 지난해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 후 환호하고 있는 모습. 우즈는 1997년에는 압도적인 비거리를 앞세워 2위를 무려 12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 오거스타내셔널
지난해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 후 환호하고 있는 모습. 우즈는 1997년에는 압도적인 비거리를 앞세워 2위를 무려 12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 오거스타내셔널
올 초 전 세계 골프 룰을 관장하는 영국의 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공동으로 비거리에 관한 보고서(Distance Insights Project)를 내놨다. 보고서에는 "지난 100년간 골퍼들의 비거리가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코스가 골퍼들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코스의 전략적이고 도전적인 요소들이 무의미해진다. 이는 골프의 장기적인 미래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비거리 증가는 단순히 하나의 요소로 설명할 수 없다. 공과 클럽 제조 기술의 발달 외에도 최근에는 디섐보처럼 운동이나 벌크업을 통한 힘의 증가, 그리고 스윙 기술 등의 발전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고 드라이버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골프가 탄생한 이후 드라이버 헤드 소재는 초창기 나무부터 시작해 메탈, 티타늄 등 단계적 변화 과정을 거쳤다. 그 중 비거리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를 한 게 티타늄이다.

1995년 티타늄 드라이버 출시 후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의 비거리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전 10년 동안 PGA 투어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는 고작 3.1야드 증가에 그쳤지만, 1995년 이후 10년 동안은 무려 25.2야드가 늘었다. 지금은 300야드가 ‘뉴 노멀’인 시대가 됐지만 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평균 300야드를 넘기는 장타자는 존 댈리(미국)가 유일했다.

티타늄이 비거리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비결은 뭘까. 가벼우면서도 강한 특성 덕에 페이스를 얇게 만들어 스프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어서다. 더불어 헤드 사이즈를 크게 만들어 빗맞은 타구에도 방향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관용성(forgiveness)을 증가시켰다.

한때 500cc가 넘는 드라이버가 나오고, 고반발 드라이버가 속속 출시되자 R&A와 USGA는 헤드 사이즈의 최대치는 460cc, 반발계수는 0.830으로 제한했다. 반발계수란 골프공을 1m 높이에서 페이스에 떨어뜨렸을 때 얼마나 높이 튀어 오른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반발계수 0.830은 83㎝ 튀어 오른다는 뜻이다. 반발계수가 0.01 늘어나면 비거리는 2야드쯤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러웨이는 지난해부터 클럽 제작에 AI를 도입했다. 지금은 설계 단계에만 AI를 이용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로봇이 직접 클럽을 제작할 수도 있다. 사진은 캘러웨이 광고에 사용된 가상의 이미지 / 캘러웨이
캘러웨이는 지난해부터 클럽 제작에 AI를 도입했다. 지금은 설계 단계에만 AI를 이용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로봇이 직접 클럽을 제작할 수도 있다. 사진은 캘러웨이 광고에 사용된 가상의 이미지 / 캘러웨이
반발계수의 제한과 함께 획기적인 소재의 변화가 더 이상 없자 제조업체들은 디자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클럽 제작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한 것도 그러한 과정의 일환이다.

지난해부터 AI를 드라이버 제조에 이용하는 캘러웨이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드라이버를 만들 때는 디자인 공정이 5~7회 이내로 제한되지만, AI를 사용면서 무려 1만5000회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최적의 페이스 디자인을 찾는 데 시간은 줄고, 완성도는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골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강해진다. 오거스타내셔널은 ‘골프 성인’으로 추앙받는 보비 존스(1902~1971년)가 만든 곳이며, 골프 선수 중 ‘마스터(명인)’ 급을 초청해 경합을 벌이는 경기가 마스터스다. 오거스타내셔널과 마스터스 측은 선수들의 늘어난 비거리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비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20세기 위대한 골퍼 중 한 명이었던 헨리 코튼(1907~1987년)경은 골프에 대해 "반은 과학이고, 나머지 반은 예술이다"고 말했는데, 최근의 골프에 있어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반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세영 기자 sygolf@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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