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셧다운제 폐지가 힘을 받고 있는 가운데 폐지 반대론급부인 정신의학계가 간접적으로 질병코드를 내세웠다. 이에 게임업계는 정신의학계가 진단을 미끼삼아 수익을 챙기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질병코드 도입 논의가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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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게임중독 청소년 보호해야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독포럼은 14개 전문학술 단체, 91개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셧다운제 폐지를 위한 법 개정 철회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성명은 직접 중독코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질병코드를 의식한 모양새다. 중독포럼은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적극 나섰던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상임이사로 재직하는 단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셧다운제 폐지를 위한 법 개정을 철회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예방으로 아이들의 건강과 발달을 도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코로나19로 인해 게임은 아동·청소년 정신행동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조사 결과를 예로 들며 셧다운제 폐지를 반박했다. 게임이 스마트폰 과의존, 우울증, 자살시도 등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셧다운제 폐지가 아닌 제도적 보완장치 확충이 시급하다고 했다. 예방, 치료, 보호 서비스 인프라 확대와 제공전략 등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국 교수는 "현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며 "학부모 단체 등과 협업해 대국민 캠페인을 여는 방안도 기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질병코드 도입 연구 10월 마무리

관련업계는 이들이 성명을 낸 배경으로 WHO의 질병코드 분류 도입을 꼽는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거듭된 논란에도 불고하고 민관 협의체를 꾸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도입 문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19년 WHO가 게임중독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ICD) 개정안을 확정한데 따른 것이다. 정부의 연구 지원은 WHO가 내년 1월 발효하는 개정안을 시행을 앞두고 진행하는 것이다. 게임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될 지 여부는 아직 미확정이다.

민관 협의체가 진행 중인 연구는 ▲과학적 근거 분석 ▲국내 실태조사 기획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총 3가지다. 연구진은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 결정에 대해 과학적‧객관적 검증을 실시하고, 진단기준에 따른 국내 진단군 현황과 특성 등의 실태조사를 설계하고 있다. 이어 국내 도입 시 산업‧문화‧교육‧보건의료 등 사회 여러 영역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정확한 유병률을 판단할 순 없다. 질병코드 진단도구가 제대로 실전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조사이자 검증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진단도구가 개발되면 이후 문체부와 복지부가 유병률을 조사하게 된다. 연구진은 "진단도구 개발은 마무리 단계로 마지막 테스트를 남겨뒀으며 10월에 연구가 종료된다"고 밝혔다.

연구를 담당한 정슬기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직접 실험군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야 해서 코로나19 상황 탓에 연구가 길어지고 있다"며 "한국의 게임문화를 반영하는 등 진단도구에 굉장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개발될 진단도구로 측정하면 지금까지 나왔던 것보다 유병률이 낮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게임중독 등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미리 선별해 치료 받게하는 대처가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게임업계 "근거 없는 주장" 반발

게임업계는 중독포럼의 성명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게임중독과 질병코드 관련 논의는 지난 몇년간 계속 되풀이된 논쟁으로 명확한 근거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정신의학계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게임과 중독 간 상관관계를 연구했지만 명확한 연구결과를 도출하지 못했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독포럼이 아동·청소년 정신행동 건강 논의를 다시 거론하는 지 모르겠다며 게임중독 질병코드 논의를 끌어오는지가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정신의학계가 진단을 이유로 수익을 챙기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이미 근거가 없다고 결론 지어진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며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을 주장하는 일부 교수와 질병코드 도입 찬성론자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질병코드 연구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김정태 교수는 "일부 주체만 모여 논의를 할 게 아니라 게임계, 의학계, 정치권 등 관련 주체 모두가 모여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며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지 명백한 근거를 밝혀내야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이지훈 서원대 교수는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시 발생할 문제점과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