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빅테크 '갑질 판단' 새 기준 도입...불공정행위 규제에 총력

입력 2021.09.14 06:00

공정거래위원회가 빅테크에 특화된 거래상 지위 남용(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마련한다. 현재 거래상 지위의 판단 기준인 ‘전속성', ‘계속성'만으로는 플랫폼 경제에서 일어나는 빅테크 갑질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거래상 지위 판단 기준이었던 ‘전속성'과 ‘계속성'을 완화하고 ‘데이터 보유 규모'와 ‘거래빈도’를 새 기준으로 도입할 방침이다. 또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판단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으로 ‘필수적 중개력'이라는 새 개념을 도입하고, '시장 획정'을 훨씬 더 넓게 해석해 시장지배적 지위 판단을 쉽게 한다는 방침이다.

공정거래법은 23조에서 거래 거절이나 차별적 취급, 경쟁자 배제 또는 방해, 부당한 고객 유인, 거래상 지위 남용, 사업활동 방해, 부당한 지원 등 불공정행위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또 공정거래법은 4조에서 1개 기업이 시장점유율 50% 이상, 3개 이하 기업이 시장점유율 75% 이상을 차지할 때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추정한다. 3조의2에서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수량을 부당하게 변경하거나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 등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불공정행위,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한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모습 / IT조선DB
13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견제하기 위한 밑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행 법상으로는 빅테크의 갑질을 확인해도 규제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자사 가맹택시에 호출을 몰아줘 비가맹택시를 차별한 혐의가 확인되더라도 처벌하기가 어렵다. 카카오에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를 적용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카카오가 전속성과 계속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즉 택시기사들이 오랜 기간(계속성) 오직 카카오T와만 거래(전속성)한다는 점이 인정돼야만 규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의 질서 하에서는 카카오T와 같은 플랫폼 기업의 전속성, 계속성 입증이 어렵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멀티호밍'이 일상화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멀티호밍은 이용자가 복수의 앱,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면서 거래할 수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카카오 택시 기사들은 카카오T만을 이용하진 않는다. 우티(우버와 티맵 합작회사)와 같은 타 플랫폼을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T의 기사들에 대한 전속성, 계속성 입증부터가 까다롭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 단독 심사지침을 마련해,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 적용 조건인 거래의 전속성과 계속성 요건을 완화하고 새 기준을 도입한다. 플랫폼 기업은 ‘데이터 보유 규모'나 ‘거래 빈도'라는 새 기준을 도입해 거래상 지위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갑으로 지목된) 기업이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기업들과 상당한 빈도로 거래를 해왔고, (거래로 인한) 데이터 보유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그 기업이 거래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기업의 경우 전속성과 계속성 요건은 거래상 지위를 판단하는 ‘보조 요건' 정도로 완화시킬 방침이다.

"매출액으로 시장지배적 지위 판단 어려워 …‘필수적 중개력’ 개념 도입"

또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규제하기 위한 새 기준도 도입된다.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적용하려면 그 기업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을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으로 보고 있어,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입증이 까다롭다. 이에 공정위는 ‘필수적 중개력'이라는 새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 시장지배적 지위 판단 요건으로 삼을 계획이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시장 진입 초기 무료화 전략, 전략적 적자 등이 일상화되면서 기존 매출액 기준으로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판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네이버 포털과 카카오톡도 시장 진입 초기에 소비자에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매출을 내지 않았다. 그는 "'필수적 중개력' 이라는 새 개념을 도입해, 구태여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이용사업자들이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고선 거래가 어려운 경우 충분히 그 플랫폼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새롭게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공정위는 가입자 수, 보유 데이터량 등을 종합 고려해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판단하게 할 계획이다.

"시장 획정 중요성 완화" 경쟁법 집행 부담 줄여

또 공정위의 ‘시장 획정 중요성'도 완화한다. 특정 시장에서 독과점을 판단하려면 먼저 시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정하는 시장 획정이 필요하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이나 인수합병(M&S) 심사 때도 시장 획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향후 공정위와 플랫폼 기업 간 갈등에서 ‘시장 획정'이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사전에 경쟁법 집행에서 경쟁당국의 시장 획정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네이버와의 소송에서 ‘시장 획정'을 잘못해 패소한 경험이 있다. 2008년 공정위는 네이버가 동영상 콘텐츠 업체 판도라 TV와 계약을 맺으면서 판도라TV에 개별광고를 넣지 못하도록 한 행위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2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2014년 대법원은 문제가 된 행위가 네이버의 ‘동영상 중개 과정'에서 이뤄졌다며, ‘인터넷 포털 서비스'라는 공정위의 시장 획정은 부당하다고 봤다. 당시 네이버는 인터넷 포털 시장에서는 점유율 50%를 훌쩍 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였지만, 동영상 중개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낮았다.

플랫폼 기업들은 검색, SNS 서비스 뿐 아니라 쇼핑, 웹툰, 광고 등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시장 획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 시장 획정 방식을 적용하면 관련 시장을 지나치게 좁게 획정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공정위는 플랫폼 경제의 특수성을 반영해 시장 획정의 중요성을 완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시장 획정은 경쟁제한성 판단의 주요 선결요건으로 간주돼 왔으나 플랫폼 경제에서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처벌에서 엄밀한 시장 획정을 사전에 할 필요가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획정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고려하진 않을 수 없다. 획정 자체의 중요성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획정의 기준을 바꾸고 획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완화한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아직 어떤 방식으로 명문화할지를 확정하진 못했다. 다만 공정위가 획정한 시장에서 경쟁제한성 등 문제를 살펴보고, 추가적으로 다른 시장의 영향도 추가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고 설명했다. 시장획정이 잘못돼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자체를 규제할 수 없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같은 변화를 "플랫폼 기업에 대한 법적용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공정위는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의 ‘자기사업 우대 행위(self-preferencing)금지를 불공정행위로 명문화하고 ‘검색 알고리즘 중립성’ 준수 의무를 부여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보다 더 플랫폼 경제 질서를 규제하기 위한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내용들이 담긴 것이 심사지침이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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