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의 메카인 선전(深圳)도 초창기엔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기술과 디자인을 도용한 ‘짝퉁의 메카’였던 때가 있었다. 오죽하면 중국인 스스로 이런 업체를 산자이(山寨), 한국말로는 산적떼 같은 놈들이라 할까. 어쩌면 이런 산자이 중에 가장 성공한 회사가 바로 샤오미다. 비록 태생은 그러했으나, 샤오미는 창업 10년도 안돼 명실 상부 세계 3대 스마트폰 메이커, 독보적인 1위 IOT 기기 제조사가 되었다.

샤오미는 한국 시장에 유통 모델로 진출하다 보니, 그저 가성비가 뛰어나니까 성공했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서 샤오미가 하고 있는 걸 들여다보면, 샤오미가 엄청난 마케팅 회사란 걸 알 수 있다.

샤오미 마케팅의 핵심은 독특한 열혈팬 육성 프로그램에 있다. BTS에는 아미(ARMY)가 있다면, 샤오미에겐 미팬(Mi Fan)이 있다. 좁쌀을 뜻하는 샤오미답게, 샤오미의 로열티 프로그램은 쌀(米) 포인트라 부른다. 1 포인트가 대략 우리 돈 13원의 가치를 갖는데, 다들 이거 모으자고 난리다. ‘8’자 좋아하는 중국 기업 아니랄까 봐, 쌀 포인트를 얼마나 모았는지에 따라 고객 등급을 8단계로 나눠, 아주 차별적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데 뭐가 대단한 걸까?

첫째, 샤오미의 포인트는 당연히 물건을 구매해도 주지만 매우 찔끔 준다. 훨씬 많은 포인트를 팍팍 쌓으려면 브랜드가 원하는 다양한 마케팅 홍보 미션들을 수행해야 한다. 포인트는 이에 대한 수고비다.

광고 대행사에 돈 주고 하는 마케팅은 일절 하지 않고, 대신 소비자들을 입소문 마케팅 에이전트로 직접 활용하는 셈이다.

이게 작동되려면 우선 포인트 모으기가 그만큼 가치 있어야 한다. 샤오미는 여기서부터 남다르다. 예를 들어 샤오미가 어떻게 최신 스마트폰을 론칭하는지 살펴보자. 샤오미의 하이엔드 최신 폰과 같은 스펙의 S사 제품은 120만원, A사 제품은 200만원에 팔린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 쥔 회장은 특유의 스티브 잡스 같은 복장에 제스처로 론칭 이벤트에 등장, 샤오미의 최신 폰을 단돈 50만원에 3개월 뒤에 팔겠다고 선언한다.

몇 개월만 지나도 반값으로 떨어지고, 구형이 되는 스마트폰 기기 특성상, 고객 입장에서 관건은 이 제품을 하루라도 빨리 손에 넣어야 가성비가 대박 난다. 3개월 뒤에나 정식 론칭할 신제품을 지금 바로 살 특권을 등급이 높은 고객 순으로 한정 물량을 선착순 사전 판매하는 식이다.

보통 몇 십 초에서 몇 분 안에 미리 준비한 수십만 대의 1차 사전 판매 물량은 완판된다. 매번 더 빠른 속도로 완판 됐다는 것 자체가 입소문에 좋은 꺼리가 된다. "뭘 이렇게까지 하면서 전화길 바꿔" 하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젊은 청춘들에게 샤오미는 "돈 없어? 그럼 마케팅이라도 도와. 그럼 잘해 줄께." 이런 메커니즘 이다.

출처: https://url.kr/62gzxs
출처: https://url.kr/62gzxs
두 번째로, 샤오미는 자사 홈페이지 내에, 사용자 커뮤니티를 품고 있다. 제조사가 직접 사용자 커뮤니티를 운영해서 샤오미만큼 활성화시킨 사례가 또 있을까? 샤오미는 공식적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조직이 없다. 별도로 광고비도 집행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용자 커뮤니티 관리에 모든 마케팅 인력과 자원이 집중한다.

샤오미는 한 마디로 온라인으로만 그것도 기발한 입소문 마케팅으로만 매년 43조원 어치를 팔아치운다. 샤오미는 고객군 프로필을 분석, 목적별로 선별하여 다양한 설문 조사를 수시로 진행하며 제품 스펙부터 신상품 론칭 여부 등 중요 의사 결정의 근거로 삼는다.

커뮤니티 멤버들은 8개 등급으로 나눠, 다양한 미션 수행 시 부여되는 100여 가지의 벳지와 아이템들로 마치 거대한 게임 세계(Gamification)를 보는 듯하다. 리니지 게임의 광선검처럼 다양한 벳지와 아이템을 결합하면, 할인 쿠폰이 만들어진다거나 포인트가 갑자기 쏟아지는 식이다.

많은 포인트를 쌓아 고위급이 된 멤버나, 복잡한 소프트웨어 문제를 해결해 낸 파워유저를 초대해 수시로 타운 미팅을 가진다. 이들은 샤오미 회장과 경영진과 어깨동무 수준으로 토론하고 푸짐한 선물을 보상으로 받는다. 샤오미의 신상품 기획 회의이다. 이 미팅은 특이하게 각자 먹을 걸 싸와서 주섬주섬 늘어놓고 나눠먹는 서양의 BYOF(Bring Your Own Food) 방식이다. 이런 친밀한 모임을 통해, 고위급 멤버나 파워유저들은 커뮤니티 관리자로, 제품 개발 엔지니어로 채용이 이어진다.

이렇게까지 제품 개발과 개선에 고객이 직접, 그리고 깊게 참여하는 회사가 또 있을까?

세 번째로, 샤오미는 대부분의 제품을 자사 온라인 직영몰에서 직접 판매한다. 다른 유통 경로로 판매해도 결국엔 사용자의 모든 데이터가 샤오미 통합 서버에 자동으로 모이게 한다.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갖춘 샤오미와 협력사들의 모든 스마트 기기들은 "Mi Home" 이라는 어플로 구동된다. 사용자 입장에선 내 스마트폰이 모든 기기를 통제하는 ‘마스터 리모콘’이다. 이 놀라운 편리함을 한 번 맛본 고객은 다른 생태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샤오미의 AI 서버에 등록된 기기만도 2020년말 기준 3억5000만대, 동시에 5대 이상의 기기를 연결한 고객도 700만명을 돌파했다.

고객의 개인 정보부터, 구매 이력, 실시간 기기 사용 현황이 고스란히 분석되고, 여기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활동 사항, 평가, 요구사항이 기존 제품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체계적으로 녹아드는 구조다.

고객의 데이터를 획득하고, 분석하여 활용하는 측면에서 국내 기업들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제조사들은 일반적으로 유통 채널에 물건을 팔지, 그걸 구입한 최종 고객의 정보는 감감무소식이다. 고객 데이터를 모으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실시간 데이터가 아니다 보니 모아 봐야 사실상 무용지물이고, 판매 후엔 고객과 연결점이 없어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마케팅 대행사에 의존해야 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샤오미가 대륙에서 정제된 마케팅 시스템을 장착하고 글로벌로 나서기 전에 우리도 대응이 필요한 때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앤디 김(김도웅) 이언이노랩 대표는 화웨이, 알리바바, 샤오미, BOE, TSMC, HTC 등 중화권 기업을 직접 컨설팅하고 해당 기업의 경영진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저서를 발간한 바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를 거처, IBM 미국/중국 컨설팅 부문 전무, 대만 HTC본사 부사장(가상현실사업, CIO, 디지털 혁신 담당),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과 무선사업부 그룹장을 거쳤다. 디지털 혁신 컨설팅과 스타트업 투자에 특화된 이언이노랩 법인을 설립했다. 문의 사항 admin@eongrou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