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각국이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재배 단지 조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되면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옵션이 생긴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일각에서는 적절한 규제가 뒤따라야 관련 산업 활성화 및 대마 오남용을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헴프(대마) 특구로 지정된 경북 안동의 경북바이오산업단지 전경 / 경상북도
헴프(대마) 특구로 지정된 경북 안동의 경북바이오산업단지 전경 / 경상북도
제약바이오업계와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이 대마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거나 의료용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정부도 대규모 재배 단지 조성 및 환각 물질이 적은 산업용 대마를 일반 마약과 따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하는 등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2월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바이오기업 재즈 파마슈티컬(Jazz Pharmaceuticals)는 대마초 기반 의약품 ‘에피디올렉스(Epidiolex)’와 ‘나비시몰(Nabiximol)’의 제조역량 확대에 나섰다. 1억달러(1200억원)를 투자해 영국에 새로운 제조공장을 지어 2024년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재즈 파마슈티컬은 지난해 뇌전증치료제 에피디올렉스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 GW제약(GW Pharmaceuticals)을 72억달러(8조74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에피디올렉스는 ‘레녹스-게스토’ 증후군, 결절성 경화증 복합체 또는 드라벳 증후군 발작을 치료하도록 승인된 대마 성분인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 기반 의약품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최초 승인된 대마초(Cannabis) 약물로, 2021년 매출 4억6000만달러(5584억원)를 기록했다. GW는 대마초 기반 말기 다발성경화증 후보물질인 나비시몰 역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FDA에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대마와 대마 식물에서 발견되는 자연 발생 칸나비노이드 중 하나인 칸나비디올이 상업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대마 식물에 ‘델타-9-테트라히드로카나비놀(THC)’과 ‘CBD’가 가장 흔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마 추출물을 포함한 CBD 성분에는 매우 낮은 수준의 THC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 성분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식품, 음료, 식품첨가물로 CBD가 큰 인기를 끌고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글로벌 시장에는 법적으로 대마 및 대마 성분이 농산물로 분류돼 있고, 식품 용도로 사용 가능하다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다.

국제기구 차원에서도 칸나비디올 규제에 대한 검토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CBD 사용과 관련된 공중보건 관련 문제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유엔마약위원회에서도 대마 및 대마 관련 물질의 평가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하는 등 다소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규제 차이는 존재한다. 식품 및 식품첨가제로 사용가능하다는 명확한 규제와 가이드라인이 있는 나라가 있는 반면, 시판 전 안전성 평가를 요구하는 곳과 아예 허용하지 않거나 매우 엄격히 규제를 적용하는 나라도 존재한다.

미국은 2018년 농업개선법(Agricultural Improvement Act)을 통해 0.3% 미만 THC를 함유한 대마를 농산물(Agricultural commodity)로 인정하면서 식품 용도로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FDA는 2018년 6월 처음으로 대마초 기반 에피디올렉스를 의약품으로 허가했으나, 현재까지 의약품 이외 식품 등에 대해서는 CBD 안전성 평가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이라 허가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CBD는 의약품 원료(API)로 허가됐고, 의약품 원료로 허가된 CBD가 식품첨가제 또는 식이 보충제(Dietary Supplement) 등까지 확대되지는 않고 있다. 원칙적으로 미국 내에서 FDA 허가 없이 판매되는 CBD 함유 제품들은 모두 불법이나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CBD 함유 식품들을 모두 단속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단시간에 부작용 등 안전성 연구가 충분히 이뤄진 것도 아니라 시장이 맹목적으로 커져가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밖에 미국 연방정부차원 규제법은 없으나 뉴욕, 텍사스, 버지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식품 용도 등으로 CBD가 사용가능하다.

EU는 2020년 11월 유럽사법재판소가 EU회원국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CBD 시판을 다른 회원국이 금지할 수 없게 했으며, CBD는 마약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판결도 내렸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는 THC와 다르게 CBD는 향정신성 작용이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유럽집행위원회는 2020년 12월 예비타당성 검토를 통해 ‘칸나비노이드는 UN 마약단일협약에 따른 가장 엄격한 범주인 스케줄4(Schedule IV) 의약품으로 간주되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 즉 칸나비노이드가 식품에 해당된다는 의미다. 다만 신규 식품(Novel food)에 해당될 경우에는 시판전 승인절차 및 규제를 거쳐야 한다.

일본은 성숙한 줄기 및 종자에서 추출된 CBD 오일은 대마로 분류하지 않는다. 일본 보건성이 발행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CBD 오일이나 THC가 없는 CBD 제품 수입은 합법으로 규정됐다. 또 화학적으로 합성된 CBD의 경우도 수입은 허용하되, 수입자로 하여금 해당제품이 대마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규정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가 대마의 성숙된 종자를 ‘식품 및 의약용 천연원료’로 등재하는 등 오랜기간 전통의약품 또는 식품으로 사용돼 왔다. 반면 최근 CBD를 포함한 대마 관련 4가지 원료를 화장품 원료 또는 원재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한국은 대마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규제하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공무 또는 학술연구용으로 수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마의 수출입, 제조, 매매, 매매 알선 행위를 금지하고있다.

따라서 국내 생산 산업용 대마 원료는 사용할 수 없지만 허가받은 대마 성분 의약품은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희귀·난치성 환자들이 고가 치료제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의 경우 1병당 164만원으로 매우 고가이나,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대마를 원료로 하는 의약품의 연구 및 제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에피디올렉스의 연간 수입 규모는 10억원에 달한다.

이에 최근 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산업용 대마 생산 전 주기 안전 관리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추진 중이다. 환각 물질인 THC 함유량이 0.3% 미만인 대마를 현행 마약류관리법에서 분리해 규제를 완화 방안하는 방식으로 산업화를 구상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해부터 이미 대마 관련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경상북도는 2021년 4월 국내 최초로 헴프(HEMP) 산업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 실증에 돌입했다.

같은해 8월에는 이미 생산된 산업용 대마에서 칸나비디올 성분을 추출하고 원료 의약품 생산·수출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추출·정제 방식 간 비교 검증 및 주요 수출 대상국의 수출입 관련 제도를 파악하는 작업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0년 심현주 전북대 약대 교수의 ‘LED 식물공장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첨단 식의약 소재 산업화 기술개발 사업’을 바이오산업 핵심 기술 개발 사업(첨단바이오신소재)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은 의약용 대마를 포함한 식물공장 생산 작물의 산업화 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세계적으로 대마를 활용한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으며, 나라마다 대마 관련 규제가 서로 다르게 정립 중인 상황이다"며 "기업들은 큰 비즈니스 기회로 다가올 수 있는 대마 관련 시장과 규제 환경 변화를 관심있게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불법 대마 유통이 연일 적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남용 문제를 억제하기 위한 뚜렷한 해결책 마련과 동시에 상업화를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마약류에 민감한 국내 상황에서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도 "세계 의료 산업 기류가 대마에 대해 점점 관대해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관련 당국은 불법을 억제하면서도 산업육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