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철강업계의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국내 철강업계의 미국 수출길이 가로 막힐 위기다.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을 예상하고 이미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8일 동남아철강협회(SEAISI)에 따르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 등 동남아 6개국의 철강 수요가 2017년 8000만톤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에는 9000만톤을 넘어설 전망이며, 이후 연간 5~6%의 안정적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베트남 포스코 가공센터 포스코-VNPC 전경. / 포스코 제공
북베트남 포스코 가공센터 포스코-VNPC 전경. / 포스코 제공
2016년 기준 베트남 철강 수요는 2200만톤을 기록하며 2016년 대비 20% 급증했다. 태국은 1900만톤으로 15%,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각각 1200만톤, 1100만톤으로 모두 10%대 증가율을 나타냈다. 필리핀 역시 11% 늘어난 1000만톤을 기록했다.

늘어나는 수요만큼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세아제강 등 업체는 발 빠른 현지 투자에 나섰다.

◆ LG전자 특수 노리는 포스코의 '선견지명'

포스코는 현재 베트남에 포스코-베트남(냉연제품 생산법인), 포스코-SSVINA(형강·철근 생산법인), 포스코-VST(스테인리스냉연 생산법인), VPS(철근·선재 생산법인), 포스코-VHPC(냉연·스테인리스 가공센터), 포스코-VNPC(냉연제품 가공센터) 등 철강 관련 법인 6개를 운영 중이다.

포스코의 타깃은 베트남 시장에 뛰어든 LG전자다. LG전자는 2015년 하노이 인근 하이퐁에 생산단지를 조성해 협력업체와 휴대전화·TV 등을 생산 중이다. 포스코-VNPC는 최대수요처인 LG전자에 월 1500톤의 가공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LG전자의 생산량 확대를 대비한 VNPC 등 가공공장의 증설 가능성도 있다.

포스코 한 관계자는 "가동률을 넘어설 만큼 가전 수요가 증가할 경우 공장을 증설해야 한다"며 "LG전자의 투자 규모에 따라 현실화 될 수 있는 부분이다"고 전망했다.

BMI 리서치에 따르면 베트남 건설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7.5% 성장할 전망이다. 철근 및 H형강을 각각 연간 50만톤씩 생산하는 포스코-SSVINA 공장의 특수가 기대되는 이유다.

포스코는 2010년 인도네시아 현지 국영 철강사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해 상공정 단계인 슬래브를 생산하는 크라카타우포스코(PT.KRAKATAU POSCO, PTKP)를 설립했다. 지분 비율은 7:3(포스코:크라카타우스틸)이다.

포스코는 크라카타우포스코에 열연·냉연 등 하공정 투자 설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5월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인도네시아 산업부 장관을 만나 투자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현대제철·동국제강·세아제강, 베트남 시장 호시탐탐

현대제철 역시 베트남 건설경기 호황에 힘입어 5월 베트남 피코(FICO) 등 현지 3개 고객사와 향후 1년간 총 5만톤의 H형강을 공급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제철 한 관계자는 "이번 MOU는 좁아진 H형강의 수출 판로를 확대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다"며 "베트남 현지에서 중국산 H형강에 반덤핑 관세가 매겨지게 되면 수요 확대 및 내수가격 상승을 통한 수출량 증가가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멕시코·인도·태국에 이어 베트남을 네 번째 해외코일센터 진출 지역으로 검토 중이다. 동국제강은 태국에 코일센터를 설립해 냉연 갈바륨·컬러강판·용융아연도금강판 등을 수출 중이다.

코일센터란 철강사로부터 강판을 구매한 뒤 한 차례 가공해 최종 수요처에 납품하는 철강제품 생산공장이다.

세아제강은 최근 베트남 동나이성에 부지 매입을 완료하고 연내 7만5000톤급 강관 생산기지를 착공한다. 생산된 강관은 미국으로 수출돼 가스·기름 등 에너지 채굴용으로 쓰인다.

철강업계는 이번 투자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비한 조치로 본다.

세아그룹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16년 세아제강의 미국 강관공장 인수 후 추가 해외 투자를 추진했고, 동남아시장 시장 상황을 고려해 베트남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22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철강 분야 무역수지 적자가 두배로 늘어났다며 교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미 FTA 개정협상을 열 것을 공식 요구했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는 협정문 개정 및 수정으로 미국 수출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한편, CNN머니는 25일(현지시각) 아르셀로미탈·US스틸 등 미 철강업계 25개사 최고위급 임원이 2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철강 공급과잉과 수입 증가로 미국 철강산업이 피해를 입고 있어 시급히 조처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