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년 만에 전파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지만 이통업계의 반응이 신통찮다. 정부는 시장 친화적 전파이용 제도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기지국 검사 등 다양한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강조하지만, 이통업계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속만 부글부글 끓는다.

과기정통부는 23일 산·학·연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전파법 개정안 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설명회를 통해 드러난 전파법 개정안 중 무선국 검사제도 절차 완화는 기존 안과 비교할 때 거의 바뀐 부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통업계는 이용자 중심의 전파이용제도 혁신이라는 개정 목적과 달리 기존 규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한다.

25일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공개토론회에서 지적한 문제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채 여전히 조삼모사식 법 개정을 추진해 아쉬움이 크다"며 "결국 이용자 중심 제도 개선이라는 전파법 개정의 본질을 흐린채 생색내기식 정책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세종에 자리한 과기정통부 건물 모습. / 이진 기자
세종에 자리한 과기정통부 건물 모습. / 이진 기자
조삼모사식 무선국 검사제도 간소화…법 개정 취지 상실 우려

이통업계는 7월 26일 열린 전파법 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무선국 검사제도의 절차 완화, 목적에 위배되는 전파사용료 문제 해결책 등을 전파법 개정 시 풀어야할 숙제라고 요구했다.

김지훈 법제연구원 전력기획실장은 7월 26일 열린 전파법 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이 정도(자기확인제도)만 해도 큰 폭의 규제 완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두 달 후 열린 전파법 개정안 설명회에서 기존 10%의 샘플을 대상으로 시행한 준공검사 비중을 ‘자기확인제도’로 대체해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선국 검사제도 간소화는 정부가 내세운 ‘전파이용제도 혁신’이라는 취지와 달리 조삼모사식 변화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는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준공검사 다음 단계인 수시검사의 비중은 축소가 아닌 오히려 확대됐다. 설치 무선국 중 100%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정기검사 비중을 그대로 유지했다. 실효성 있는 규제 완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조삼모사식 개정에 그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용자 중심의 전파이용제도 개선이라는 취지가 퇴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기확인제도 절차 신설…중복 규제 성격 강해

전파법 개정의 핵심 사항은 주파수 면허제 도입이다. 면허제는 주파수 사용권을 면허의 개념으로 바꾼다. 면허를 취득한 자는 주파수를 이용해 허가 조건 내에서 자유롭게 무선국을 개설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주파수 면허취득사업자가 무선국 개설을 위한 별도의 허가·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선국을 개설할수 있도록 했다. 무선국 준공검사도 없앴다.

하지만 무선국 개설신고를 없애는 대신 무선국 설치 공사 후 제출하는 ‘자기적합확인제도’라는 행정 절차를 신설했다. 이를 위해 제출 서류를 규제기관이 검토·보완 요청할 수 있도록 해 여전히 규제 권한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자기확인제도를 위해 제출한 서류에 대한 검토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지속 제기된다.

자기확인제도 제출 서류 중 정부가 검토하는 항목은▲무선설비 기술기준 ▲무선종사자의 자격 ▲정원 배치 기준 등의 적합 여부다. 이 항목은 주파수 면허 부여 단계에서 심사가 이미 이뤄져 중복 규제 성격이 강하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굳이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면 이후 진행하는 무선국 수시검사에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한 사항하다"며 "이 항목을 굳이 서류 단계에서 중복 검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직원이 5G 기지국을 점검하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직원이 5G 기지국을 점검하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자기확인제도 신설 이유는 수수료 수입 보전 목적?

일각에서는 과기정통부가 자기확인제도를 신설하는 이유가 수수료 수입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무선국준공검사 폐지로 감소하는 수수료 수입을 자기확인제도 서류 제출 수수료로 보전하려는 속내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철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이 2018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국정감사 자리에서 밝힌 자료를 보면, 이통사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무선기지국 검사 수수료로 1686억원 이상을 지불했다. 연간 수수료로 따지면 300억원이 넘는다. 이 수수료는 KCA가 사용할 수 있는 추가 자금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주파수 면허제 도입이 실질적인 절차 간소화나 규제완화 효과 없이 명분만 내세우는 생색내기 개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법 개정방향을 관리자 중심에서 벗어나 이용자 중심으로 혁신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아직 관리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전파법 개정을 두고 개진된 업계의 입장과 지적사항을 고려해 심도 있는 논의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