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홍콩·일본 등 가상자산 제도화 성큼
우리나라만 제자리걸음…금지기조·애매함 여전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다. 아시아 주요국의 경우 가상자산 시장의 단계적 제도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금지 기조를 유지하면서 세금만 걷어가는 형국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투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13만명에 육박한 동의를 받는 배경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업계 목소리가 커진다. 세계가 가상자산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만큼, 금지 기조를 유지하며 애매하고 불안전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조선DB
은성수 금융위원장/ 조선DB
유연하고 신속한 싱가포르, 가상자산업 인정

업계는 가상자산을 단계적으로 제도화하는 아시아 주요국 상황을 참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 등은 단계적으로 가상자산을 제도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증권형토큰공개(STO) 플랫폼을 허용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을 점차 제도화하고 있다. 홍콩은 가상자산 업체에 라이선스를 부여했고, 일본은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한국블록체인협회 등이 26일 주최한 ‘아시아 가상자산 제도’ 온라인 간담회에서 "싱가포르는 STO 플랫폼 허용에 이어 은행이 가상자산업에 투자하는 것도 허용했다"며 "이는 수탁 사업을 위해 별도 회사를 만드는 국내 은행들과 확연히 다른 행보다"라고 했다. 이어 "기존 거래소들의 가상자산업 투자도 허용했다"며 "전문 투자자들의 거래 노하우와 전문성을 가상자산 파생상품 등에 접목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법 개정 이전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장에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싱가포르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할 수 있는 것만 법으로 정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라 싱가포르처럼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유연성과 신속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은 거래소에 라이선스 부여

홍콩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라이선스를 부여하며 제도화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다. BC테크놀로지그룹 산하의 OSL디지털시큐리티즈는 지난해 12월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로부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자동 트레이딩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이날 같은 간담회에 참석한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를 두고 "SFC는 라이선스를 부여하면서 ▲직업적 투자자에게 서비스 제공(증권거래사, 투자사, 중개인, 정부기관, 보험사 등)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운영자 약관 준수 ▲새로운 서비스를 개시할 경우 사전에 SFC 서면 승인 ▲매년 허가 요건 및 모든 법률 규제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보고서 제출 ▲의심 거래 식별 시스템 구축 등의 의무를 부과했다"며 "가상자산 사업을 법률 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조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증권형 토큰은 고사하고, 유틸리티 토큰을 안전하게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업권법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따라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상자산 금지 기조를 이어가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 속한 홍콩 조차 가상자산 기업에 증권 거래 라이선스를 부여할 정도로 선진 규제를 펼치고 있다"며 "세계가 가상자산을 대하는 모습을 우리나라 규제당국이 똑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시장 활성화에 투자자 보호까지

일본은 마운트곡스 거래소 해킹 사건을 기점으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제도화의 물꼬를 틀었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현금 사용률이 큰 일본에서는 디지털 지급결제 수단을 확산하려는 정부 계획에 따라 가상자산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게 됐다"며 "가상자산 정의부터 교환 사업 정의, 교환업자 등록 등 가상자산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규제하면서 이용자는 보호하는 쪽으로 제도화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용자 보호 강화와 관련해선 "일본은 가상자산 성격에 대한 설명 규정을 추가한다던지, 가상자산 신용공여시 정보제공의무를 지우게 하는 등의 방안을 실천하고 있다"며 "이용자의 가상자산 보호와 관련해서도 콜드월렛과 핫월렛에 가상자산을 분리 관리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시장 활성화 뿐 아니라 투자자 보호도 함께 수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 변호사는 "아시아 국가만 봐도 기존 제도로 포섭할 부분은 포섭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법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단계적 접근 없이 ‘금지’ 기조를 내세워 애매하고 불안전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제도로 포섭할 수 있는 부분은 포섭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등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