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815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후 그룹 제조업 계열사를 잇달아 방문하며 현장 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이라 평가받는 ‘금융 계열사’ 방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7년 전에는 활발하게 방문했지만, 깜깜 무소식이다. 이 부회장은 금융 계열사에 안 가는 것일까 아니면 못 가는 것일까.

재계와 금융 업계 등은 이 부회장의 금융 계열사 방문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금산분리법(금융과 산업을 따로 떼어 내 각자의 자본이 서로를 지배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법)에 따른 여론 의식’이라고 평가했다.

12일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금융 계열사를 방문하지 못할 뿐더러, 무리해서 방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면 복권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 운영하는 금산분리 관련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 공들이는 ‘금융 계열사’, 방문 가능성은 "글쎄"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부회장에 오른 2012년 이후 최근 특별사면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총 51곳의 계열사를 방문했다. 금융 계열사인 삼성증권을 방문한 것은 2015년 11월 단 한차례 였으며, 이후 현장 경영 명목으로 방문한 적은 없다.

금융 계열사는 타 계열사와 비교할 때 총수 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복수의 금융 계열사 관계자는 "입사 후 지금까지 회사에 이재용 부회장이 방문한 적이 없었고, 온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최근 삼성그룹이 금융 계열사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를 보이는 만큼, 방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 수준이다. 총 자산 규모가 500조원에 달할뿐 아니라, 삼성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다.

현재 삼성 지배구조는 오너일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 기타 계열사 순이다. 순환출자 방식으로 지배가 이뤄진다. 삼성생명 1대 주주는 삼성물산이고, 2대 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와 삼성카드의 1대 주주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은 그룹사 차원에서 금융 계열사의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올해 경영구조를 개편했다. 4월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 등 5개 금융 계열사를 합쳐 공동 브랜드(BI)인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출범했다.

삼성 금융 계열사 관련 정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법 하에서 ‘금융’이라는 영역을 잘못 건드리면 심각한 이슈가 될 수 있다"며 "삼성 입장에서는 금융이 독자노선을 타게 하기에도, 끌어 안고 집중관리를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관리 차원에서 금융 계열사를 방문하면 오히려 구설에 휘말릴 수 있어 금융 계열사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맞다"며 "금융 계열사 중 한 곳이 해외에 진출하기로 하거나 혹은 대규모 투자를 하는 등 번듯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이재용 부회장의 금융 계열사 방문은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8월 24일 서울 강동구 삼성엔지니어링 본사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 배식을 받고 있다. / SNS 캡처
8월 24일 서울 강동구 삼성엔지니어링 본사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 배식을 받고 있다. / SNS 캡처
‘기술 중시, 직원 소통’ 키워드로 현장 경영...비전자 계열사도 방문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연말쯤 회장으로 승진한다. 본격적으로 ‘뉴삼성’ 전략을 실행하며 매주 현장 경영에 나설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의 주요 계열사 방문은 내부 입지를 다지는 목적에서 시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8월에만 총 4곳의 계열사를 찾았다. 8월 19일 첫 현장 경영으로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했고, 같은 달 24일 서울 강동구 삼성엔지니어링센터(GEC)를, 26일에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30일에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살폈다. 9월 들어서도 행보가 이어졌다. 9월 1일 삼성인력개발원을 찾았다.

당초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기술 중시’와 ‘직원 소통’의 기조 속에서 현장 방문 기업을 결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예상을 깨고 비(非)전자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과 인재개발원을 우선순위에 뒀다.

건설 플랜트 계열사인 삼성전자엔지니어링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 신도시’ 건설 수주전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삼성인력개발원은 그룹 인재 양성소로 꼽힌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직원들의 연수와 교육을 담당한다. 그간 이 부회장은 여러 사업장에서 임직원 간담회를 통해 소통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방문지 역시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곳이 될 수 있다.

삼성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삼성SDI 등이 유력한 차기 방문지로 꼽힌다. 또 전통 제조업 분야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나 영업을 담당하는 삼성디지털프라자 등도 거론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다음에 어떤 사업장을 방문할지 미리 알 수는 없다"며 "(이 부회장은) 다른 사업장도 순차적으로 방문해 직원들과 소통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