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먼저 단행했고, LG·SK 등 주요 그룹은 상무 이상 연말 인사를 마무리했다. 회사 경영을 책임질 핵심 관계자 인사는 모두 끝났다.

3대그룹은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로 ‘조직 안정’을 꼽았다. 부회장 승진자는 없고 CEO 대부분도 유임했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된 상황에서 세대교체 대신 생존을 위한 조직 안정화와 위기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3사 모두 CEO급 여성 임원을 처음 발탁한 것도 공통점이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 각사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 각사
11월 23~24일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은 용퇴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CEO를 재신임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자리를 지켰고,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4개 주요 사업본부장이 모두 유임됐다. 실적 부진을 겪은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도 유임이 결정됐다.

SK그룹은 1일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회장을 4연임하고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장동현 SK주식회사 부회장 등 주요 CEO를 유임시켰다.

삼성전자도 5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내년에도 한종희 대표(DX부문장·부회장)와 경계현 대표(DS부문장·사장) 기존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에서 경영 안정을 도모하고 미래 준비를 위한 과감한 변화와 혁신에 나서기 위한 결정이다. DS부문에 힘을 싣기 위해 경계현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도 언급됐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3사는 조직 안정과 동시에 여성 인재를 CEO급 핵심 보직에 등용하며 견고한 ‘유리천장’을 깼다.

LG그룹이 스타트를 끊었다. LG는 이정애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장(부사장)을 사장(CEO)으로 승진시켰고, 지투알은 박애리 부사장을 CEO로 선임했다.

이정애 사장은 1986년 LG생활건강으로 입사해 2015년 그룹 공채 출신 첫 여성 부사장이됐다. 이번 인사로 국내 4대 그룹을 통틀어 비(非) 오너가 출신의 첫 여성 CEO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왼쪽부터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 안정은 11번가 신임 CEO,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 / 각사
왼쪽부터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 안정은 11번가 신임 CEO,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 / 각사
SK그룹의 비 오너 가문 출신인 여성 임원도 CEO 자리에 올랐다. SK그룹 계열사 11번가는 2일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안정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신임 CEO에 내정했다. 11번가는 안 내정자를 첫 번째 여성 CEO로 발탁해 안정은·하형일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안 내정자는 야후·네이버·쿠팡 등을 거친 이커머스 전문가로, 11번가가 최근 성공적으로 론칭한 여러 인기 서비스를 직접 기획했다.

삼성전자는 5일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부사장)을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영희 사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첫 여성 사장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다. 그는 삼성전자의 두 번째 여성 부사장으로, 2012년 승진해 10년째 자리를 지켰다.

마케팅 전문가인 이 사장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광고마케팅 석사를 마쳤다. 유니레버코리아, SC존슨코리아, 로레알코리아를 거쳐 2007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에서는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 마케팅그룹장, 전략마케팅실 마케팅팀장,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을 지내며 '갤럭시 신화'를 쓰는 데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역량과 성과가 있는 여성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여성 인재들에게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한다. 12월 중순에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2023년 사업계획을 논의할 전망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