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은 올 한해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붕괴하면서 시장은 옥석가리기가 진행됐다. 각국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가운데, 기관 투자자와 전통 금융권의 진입이 본격화됐다.
이 가운데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여전히 투기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 열기는 뜨겁지만, 산업이나 서비스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부실 기업 정리 VS 기관 투자자·전통 금융사 진입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루나’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극단적 레버리지를 바탕으로 단기간에 성장하고 붕괴했다. 테라-루나 사태는 헤지 펀드인 쓰리애로우캐피털(3AC), 대출업체인 보이저디지털·셀시우스·볼드·블럭파이의 위기로 번졌다. FTX 붕괴는 가상자산 대형 헤지펀드인 제네시스 트레이딩을 위협하고 있다.
부실기업이 사라지는 동안 기관 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전통 금융권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손바뀜이 시작됐다.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코인베이스의 기관 투자자 거래량은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규모다.
전통 금융권에서는 월가 대형 투자 은행인 JP모건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JP모건은 가상자산 지갑을 특허청에 등록하고 가상자산 이체·거래 플랫폼·결제 서비스를 준비한다고 알렸다. 이밖에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인 찰스슈왑은 채널 크립토 테마 ETF(상장지수펀드)를 상장하고, 블랙록과 뉴욕멜론은행은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개시했다.
가상자산 변동성 줄고 확장성 확대…위험자산으로 인식
쟁글은 "(기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의 대안책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시스템과 연결고리가 없는 자산이 아닌, 위험자산이자 포트폴리오 부스터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통 금융권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더리움의 처리 속도 향상이 계기가 됐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업그레이드 ‘머지’를 마친 후 속도가 높아지면서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11월 JP모건은 이더리움의 레이어2 폴리곤(MATIC) 네트워크를 활용해 첫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거래를 완성하기도 했다.
한국 시장은 위믹스로 성장통…차익만 좇는 크립토 산업 ‘정체’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비트코인트레저러스에 따르면 26일 기준 총 35개 기관 투자자 중 한국 국적은 한 곳도 없다. 미국과 캐나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중국·일본·우크라이나·독일·스위스·브라질 국적의 기관 투자자가 이름을 올렸다. 개인회사로는 미국과 일본, 스위스, 영국 등이 차지했다. 총 21개의 가상자산 기반의 펀드나 ETF 상품 대부분은 미국, 독일, 스위스, 캐나다, 홍콩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국내 코인 시장을 강타한 위믹스(WEMIX) 사태가 대표적이다. 위믹스가 거래되는 ‘미르4 글로벌’은 규제 문제로 국내에서 이용할 수 없지만, 위믹스 거래량의 97%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보인다. 국내의 위믹스 투자 열기가 서비스 확대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은행은 최근 ‘암호자산 규제 관련 주요 이슈 및 입법 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은행과 일정한 요건을 갖춘 비은행 법인(전자화폐업자) 등에
한하여 진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가상자산으로 인한 부작용 해소와 투자자 보호의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하는 한편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