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배터리 사업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미국에서 SK온과 끈끈한 관계를 다져온 포드가 튀르키예에선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혈맹’을 맺은 GM은 삼성SDI와 합작공장을 짓는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로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면 누구든 손을 잡는 ‘합종연횡’이 가속화 하는 추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완성차 기업의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강점이 없는 배터리 기업은 살아남지 못하고, 강점이 뚜렷한 기업만 살아남는 ‘적자생존’ 시대로 진입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왼쪽)와 마크 스튜어트 스텔란티스 북미COO가 2022년 5월 합작법인 투자 계약 체결 후 악수를 하고 있다. / 삼성SDI
최윤호 삼성SDI 대표(왼쪽)와 마크 스튜어트 스텔란티스 북미COO가 2022년 5월 합작법인 투자 계약 체결 후 악수를 하고 있다. / 삼성SDI
7일 배터리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삼성SDI는 8일(현지시각) 미국 미시간주에서 최윤호 삼성SDI 사장과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GM과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는다. 연간 생산능력은 50기가와트시(GWh)이며, 투자 규모는 최대 5조원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북미 현지에서 완성차 업체와 합작 공장을 짓는 것은 작년 4월 스텔란티스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 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 '얼티엄셀즈'까지 설립한 GM이 삼성SDI와 손을 잡은 것은 최근 복잡해지는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협력 구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주로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받았다. 삼성SDI에는 각형과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GM은 배터리 폼팩터(형태)를 다양화하고, 거래처를 다변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삼성SDI로선 경쟁사 대비 지지부진했던 북미 전기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왼쪽)과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왼쪽)과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대신 포드와 손을 잡았다. 2월 포드, 코치(튀르키예 최대 기업)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설립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튀르키예 앙카라 인근 바슈켄트 지역에 2026년 양산을 목표로 2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향후 45GWh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한다는 내용이다.

SK온과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출범한 포드는 2022년 3월 SK온과 튀르키예 합작법인 설립 추진 MOU를 맺었지만, 투자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상호 동의 하에 MOU를 종료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키로 방향을 틀었다.

포드의 협력 다각화는 중국 기업으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포드는 최근 35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과 합작회사를 만들어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강한자만 살아남는 합종연횡 추세는 미국, 유럽을 넘어 일본 기업까지 파고든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혼다와의 배터리 합작공장 기공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신규 공장은 18만 6000제곱미터(㎡) 규모로 건설되며, 2024년 말 완공 및 2025년 말 양산이 목표다. 총 투자금액은 44억달러에 달하며 연간 생산능력은 40GWh 규모다. 세계 완성차 판매 1위 도요타도 LG에너지솔루션과 협업이 초읽기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앤디 베셔 켄터키 주지사가 2022년 12월 5일(현지시각)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에서 열린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기공식에서 H빔에 서명을 하고 있다. / SK온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앤디 베셔 켄터키 주지사가 2022년 12월 5일(현지시각)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에서 열린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기공식에서 H빔에 서명을 하고 있다. / SK온
국내에선 LG와 삼성에, 해외에선 중국 기업에 이리저리 치이는 SK온은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빠르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 준비에 나섰다. 가격경쟁력이 높은 LFP 배터리와 기존의 삼원계(NCM9) 배터리 ‘투트랙’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SK온이 개발한 파우치형 LFP 배터리는 영하 20도 안팎의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50~70%로 급감하는 기존 배터리의 단점을 70~80%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LFP 배터리의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짧은 주행 가능 거리를 개선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차급별·지역별 배터리 수요가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면서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간 배타적 파트너십은 서로의 수요를 완벽히 채워줄 수 없는 구조다"라며 "완성차 입장에선 배터리 공급 안정화를 노리고, 배터리업체 입장에선 공급 다변화를 꾀하는 만큼, 합종연횡은 앞으로도 활발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