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알뜰폰 ‘리브엠’이 정식 서비스로 승인됐고, 조만간 은행의 부수업무(은행의 고유업무 시 자연스럽게 필요한 추가적인 업무를 일컫는 말. 지급보증업무와 증권업무 등이 있다)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민은행의 부수업무 관련 신고가 예고돼 있다.

정부는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알뜰폰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령 제정까지 최소 1년 6개월 이상 소요되며, 법령을 제정하는 국회에서 정부 부처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중소 알뜰폰 업체가 반발하는 이유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알뜰폰 스퀘어 매장 모습/ 뉴스1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알뜰폰 스퀘어 매장 모습/ 뉴스1
금융위원회(금융위)는 혁신금융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KB국민은행의 금융-통신 융합서비스(통신요금제 판매, 알뜰폰 서비스) 규제를 개선해달라는 요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리브엠은 2019년 4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 1호로 지정돼 출시됐다. 은행은 은행법 상 등록된 사업 외 다른 사업은 할 수 없지만 금융사의 통신사업 진출이 금융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국민은행에 임시로 알뜰폰 사업 허가권을 내줬던 것이다.

KB국민은행 알뜰폰 사업자로 인정한 정부

2년마다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던 KB국민은행은 2021년 한 차례 기간을 연장했고 16일 기간이 만료된다. KB국민은행은 1월 금융위에 알뜰폰 사업을 은행 부수업무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금융위가 이를 받아들였다.

강영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국민은행의 규제 개선 신청에 대해 금융위에서 12일 제도 개선을 결정했다"며 "향후 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을 부수업무로 신청하면 7일 이내에 공고를 하게 되고 향후 다른 은행들은 별도 신고 없이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자본을 지닌 은행권의 알뜰폰 시장 진입에 대해 기존 알뜰폰 사업자은 꾸준히 반발해왔다. 금융 대기업인 국민은행이 중소 알뜰폰 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리브엠의 점유율 규제나 요금제 가격 제한 등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경우, 기존 사업자나 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경우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은행 규제샌드박스 주관부처 금융위는 통신업을 관할하는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를 통해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정부는 업계 반발은 심하지만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알뜰폰 활성화가 필요하고, 금융권의 통신시장 진입을 막을 근거도 없다고 해석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사업 집행 기관인 한국핀테크지원센터 관계자는 "기존 플레이어들(알뜰폰 사업자) 의견을 수렴했지만 KB국민은행의 사업을 막을 수 없고, 영세 업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캡(한계선을 둔 제재)을 씌울 것으로 보인다"며 "자본력으로 무작정 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캡을 씌우는 것으로 알뜰폰 사업자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시장 점유율이나 요금제 가격 등에 대한 규제가 과기정통부 관할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부수업무가 은행의 건전성에 부담이 될 경우에 대비해 별도의 준수사항은 둘 방침이다.

금융회사에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한 경우, 감독당국은 금융소비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전성 지표를 관리, 감독한다.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으로 인한 적자로 건전성에 부담이 갈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별도 준수사항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부수업무를 영위함에 있어 은행은 건전성 훼손 방지와 소비자보호, 과당경쟁(도를 지나친 판매 경쟁) 방지 및 노사간 상호 업무협의 등을 위한 조치를 마련·운영하고 운영상황을 금융위에 매년 보고해야 한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이 고객 유입을 위해 알뜰폰 사업을 진행하는 행위는 작은 알뜰폰 업체들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며 "건전한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고객 유인책으로 시세 대비 크게 저렴한 요금제를 일시적으로 내놓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건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동통신유통협회(KDMA)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자가 많아지고 공정경쟁이 가능한 시장이 형성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공정경쟁을 위해 막대한 자본력을 가지고 들어오는 KB국민은행이 시장 교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캡을 씌워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부정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이 통신 시장에 들어왔으니 유심히 보겠지만, 아직은 규제가 필요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다"고 말했다.

이인애 기자 22na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