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지만, 경제 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분야 관련 한국 기업의 부담이 가중된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관련 지급 요건을 완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대처해야 하지만 해법 마련이 싑지 않다.

정부는 이번 방미 일정에서 안보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안보 협력의 핵심인 확장억제 분야에선 진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택한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얼마나 국내 기업들의 입장을 반영해줄 지는 미지수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블레어 하우스에 도착해 환영 나온 교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블레어 하우스에 도착해 환영 나온 교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사절단 122명은 25일(현지시각)부터 미국 국빈 방미 일정을 본격 시작했다. 윤 대통령과 사절단은 5박 7일간의 국빈 방미 기간 동안 총 4개의 경제 관련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시작으로 한미 첨단산업 포럼, 한미 정상회담, 한미 클러스터 라운드 테이블 행사 등에 참석한다.

특히 정상회담에선 한미 경제·안보 협력 구체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안보 분야에선 대북 확장억제 방안을, 경제 분야에선 반도체법 관련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정재계 안팎에선 ‘확장억제’가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꼽힌만큼 무난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는 확장억제 관련 별도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별도의 문건을 발표할 예정이다"며 "보다 진전된 확장억제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 분야에서 반도체법 관련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요건의 문제점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요건의 4대 독소조항인 시설 접근권 허용, 초과이익 환수,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제한 증설 등이 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법 4대 독소조항 가운데 국내 기업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국 제조 시설의 증설 제한 항목이다. 반도체 지원금을 받으려면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10년간 반도체 제조능력을 확장하는 투자나 거래가 금지되는데, 중국에 이미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중국 사업장의 생산성과 수익성 악화가 예상돼 난처한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 기업의 반도체 영업 활동까지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대체 공급 기업이 되지 말 것을 한국에 요청했다.

이같은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기업은 자율성을 침해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분쟁이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 기업의 이익이 미국 정부의 생각에 따라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미중 갈등 국면으로 인해 주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중 메모리 제재에 동참을 요구하면서 두 기업의 주가 변동성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대중국 메모리 제재 동참 요구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한국이 상대적으로 미국과 협의를 통해 기업들이 안심할 수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에선 아직까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인만큼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인지 아직 확인이 안된다"면서도 "외신에서 나온 뉘앙스만 보면 국내 기업이 마이크론 중국 판매 금지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지 말라는 것 같은데, 이런 조치가 국내 기업 매출액 수준에 영향을 줄 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