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대만 TSMC가 미국에서 생산한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제품 가격을 최대 30% 인상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인상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지만, 추격자 입장에서 고객사를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기도 하다.

대만 언론은 최근 TSMC가 2024년 하반기 가동 예정인 미국 파운드리 공장에서 양산되는 5나노급 칩 가격을 대만 공장 제품 대비 20~30% 인상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소니·덴소와 합작해 일본에 설립 중인 파운드리 공장에서 양산될 구형 공정 칩 가격도 10~15% 올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의 가격 인상 결정 요인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미국 내 생산비용 증가를 꼽을 수 있다. TSMC는 생산능력, 초미세공정 기술에서 경쟁사 보다 앞서있어 고객사들이 매번 1순위로 생산을 맡기고 싶어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3나노 파운드리를 세계 최초 양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를 세계 최초 양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 삼성전자
하지만 TSMC의 독단적 가격인상 결정은 고객사의 반발을 산다. AMD,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은 공급가격을 놓고 TSMC와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일부 외신은 가격 협상이 결렬될 경우 TSMC 고객사가 경쟁사로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AMD, 미디어텍, 퀄컴 등은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와 애플은 미국 인텔과 협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는 양산 초기 수율 문제로 대형 고객사 이탈을 겪은 4나노 공정에서 TSMC를 빠르게 뒤쫓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MD는 TSMC 대신 삼성 파운드리 4나노 공정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신제품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또 4나노 3세대 공정으로 구글의 스마트폰 픽셀8에 탑재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텐서3'를 위탁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에서도 수율을 안정화하며 ‘절치부심’했다. 불안요소였던 수율은 현재 60~70%대로 양산 초기와 비교해 안정화된 것으로 보인다.

IT 전문매체 폰아레나는 최근 퀄컴이 2025년부터 도입하는 3나노 공정 기반 AP 생산을 TSMC와 삼성전자로 분할해 맡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퀄컴은 2025년 출시할 스냅드래곤8 4세대의 경우 갤럭시 전용 칩은 삼성전자에서, 일반용은 TSMC가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 입장에서는 성능 개선을 위해 비싼 3나노 공정을 도입하는 대신 물량을 두 곳으로 분산해 가격 협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의 기본 스탠스는 TSMC 단독 공급이 아닌 다변화를 원한다"며 "삼성전자가 내년 3나노 2세대 공정에 진입하면서 수율 안정화를 빠르게 이룬다면 퀄컴, 엔비디아 등 고객사 확보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4월 27일 열린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 3나노 이하 선단공정에서 작년 세계 최초로 GAA 아키텍처를 도입했고 고객사는 모바일, HPC(고성능컴퓨팅) 중심으로 형성 중이다"라며 "현재 삼성 파운드리는 3나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고객사와는 테스트칩을 제작하는 단계다"라고 밝혔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