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더위와 습한 장마로 일선 가전매장마다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는 모양이다. 특히, 대당 판매가격이 200만~300만원대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대표 프리미엄 가전 '무풍 에어컨'(Q9500)은, 에어컨 특유의 차고 억센 바람을 싫어하는 중장년 고객층을 중심으로, 첫선을 보인 작년에 이어 히트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무풍 에어컨 개발에 본격 착수한 건 지난 2010년이다. 연인원 200여명의 생활가전사업부 소속 석·박사급 연구원이 투입돼, 5년여간 연구를 거듭한 결과물이 바로 Q9500이다. 이 제품에는 미국 등 해외특허 11건을 포함해 국내외 특허 수십 건이 녹아 있다. 삼성은 Q9500용으로 출원해놓은 관련 특허가 일제히 공개되는 지난 2016년 초에 맞춰, 제품 출시일 역시 같은 해 1월로 잡았다.
무풍 에어컨의 최고 핵심기술은 여러 개의 미세 구멍(마이크로 홀)에서 균일 온도의 냉기를 전면에 송풍, 강한 바람 없이도 쾌적한 온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의 관련 한국특허인 '전면송풍방식 공기조화장치'(출원번호 10-2014-0116073)는 지난 2014년 9월 출원된 뒤, 작년 3월 공개됐다.
풍향 조정이 불가했던 전작(Q9000)의 단점을 보완, 차기 무풍 에어컨에 적용시킨 '기류 조절기'(airflow regulator) 관련 미국특허(출원번호 14/814,753) 역시 2016년 2월 공개됐다.
주목할 점은 '특허 공개' 시점이 제품 발표를 전후해 모두 이뤄졌다는 것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무풍 에어컨의 특급 기술에 대한 공개를 최대한 늦추거나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지난해 이맘때쯤 '무풍 에어컨 적용 특허 현황' 자료를 삼성전자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삼성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출원은 돼 있으나 아직 정식 등록 전이고, 영업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성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허가 출원된 상태라면, 등록 전이라도 '공개'돼 있을 개연성이 높다. 특히, 해당 제품이 출시까지 된 상태인 경우, 더욱 그렇다.
특허는 해당 발명자에게 20년간 국가가 합법적으로 독점권을 주는 제도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가는 발명자에게 해당 기술이나 노하우를 만천하에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대부분 출원(특허 신청) 후 1년 6개월이 지나면, 공개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면,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각국 특허청이 통상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특허 공보'라는 전자문서를 통해 해당 특허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그 기술을 들여다본 뒤, 더 많이 활용하고 개선시켜, 보다 나은 산업 발전을 이루라는 취지에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특허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라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시행 중이다.
특허정보 전문 온라인DB 등을 활용한 '폭풍 검색'이 시작된 건, 삼성 측으로부터 자료제공을 거부당한 바로 그때부터였다. 먼저, 무풍 에어컨의 주요 특징과 제원부터 파악했다. 그 뒤, 각국 특허 DB를 샅샅이 훑었다. 무의미한 노이즈는 하나하나 발라냈다. 이후 제품과 특허 청구항·도면 등을 일일이 대조, 마침내 해당 IP 정보를 찾아냈다. 삼성의 기밀(?)이 털리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빅데이터로서, '특허정보'가 갖는 힘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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