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한번에 서울 한복판이 통신지옥으로 변했다.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 얘기다. 이번 사고로 인근 지역에서 KT가 제공하는 전화, 인터넷, IPTV 서비스가 모두 불통이 됐다. 서울 4개구, 경기도 일산 일부 지역 등 서울의 4분의 1쯤이 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드는 세상이 됐다. 아현지사 화재가 평일 발생했다면 초각을 다투는 은행·증권업계까지 피해가 이어지는 아찔한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다. 아현지사 화재는 단순 광케이블 화재 사고가 아닌 심각한 국가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격적인 것인 셈이다. 정부는 최근 이통업계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다양한 논의 후 5G 시대 통신재난 사태 예방을 위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관리 소홀 지적을 받은 통신구 대상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조치와 함께 KT에 쏠린 통신망의 이원화 등 대비책을 발표했다. IT조선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내린 통신 처방전을 분석함과 동시에 미래 통신재난 사태 예방을 위한 대비책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최근 현장실태 조사와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TF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통신재난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통업계에서는 과기정통부가 그럴듯한 대책만 내놨을뿐 결과적으로 망이원화, 소방설비등급 강화 등에 필요한 투자비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통사가 적극적으로 안전시설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 / 류은주 기자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 / 류은주 기자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대책을 자세히 보면, 2018년 11월 KT 아현지사 화재처럼 ‘통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통사는 타사 통신망을 활용해 전화나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 통신 장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 통신사는 일반재난관리 대상시설인 D등급 지사라 하더라도 통신망 우회로를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이통사는 전국 870곳 지사 중 800곳에 달하는 D등급 지사까지 모두 우회로를 확충해야 한다. 5G 인프라 투자에 이어 통신망 안정을 위한 투자를 이미 진행한 상태에서 2019년 이통사의 전체 투자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체적인 방식과 시점이 빠져있다. 백업망 구축 방식과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2019년에 추가로 논의하겠다는 계획만 잡혀 있다. 원론적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기정통부는 통신망 우회로 확보를 위한 투자비를 고려해 이통사별로 재무능력에 따른 유예기간을 준다. 이통사의 투자 확답이나 기한 확정과 같이 풀기 어려운 사안을 뒤로 미룬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또 2019년부터 870곳을 직접 점검하고 점검 주기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통사의 주요 지사 80곳쯤만 점검해 온 정부의 관리 여력을 생각하면 10배가 넘는 모든 지사를 제대로 점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통업계에서는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화재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과기정통부가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백업망 구축을 위한 투자 유인에는 소극적이라는 불만도 드러낸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정부는 법이나 제도에 미비한 부분을 최대한 신속히 보완하고 시행할 생각이다"라며 "이통사가 평상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입고, 더 많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 정책에 뜻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통업계는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사업자가 통신재난 대응 관련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형식 SK텔레콤 운영그룹 상무는 "KT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원점에서 다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까지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현실적 고민이 있다. 투자를 유도할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범석 KT 네트워크운용본부 상무도 "사실상 사업자의 투자만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시설 투자가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