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2년부터 인구 감소 영향으로 해양경찰 등 모든 ‘전환복무’를 중단시킨 후 현역병으로 활용한다. 산업기능요원 등 전문연구요원 제도에 따른 병역특례 인원도 일부 조정해 연간 4000명 규모로 정했다. 이와 병행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절차도 돌입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병역자원의 일부를 국가과학기술의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는 제도다. 1973년 3월 KAIST를 한국 최초로 병역특례 기관으로 선정한 ‘병역의무 특례조치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점차 그 대상을 확대·적용했다.

과학기술계는 강제노동 금지 내용을 담은 ILO 제29호가 시행될 경우 현행 전문연구요원 대상 특례제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이공계 분야 고급 과학기술 인재양성을 통한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발전을 이끄는 핵심 제도다. 병역특혜 시비 등 이슈의 여파로 특례 인원이 대폭 줄어들거나 제도 자체가 폐지될 경우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 과정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연구요원제도 혁신을 위한 4개 과기원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왼쪽)과 이기훈 광주과학기술원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 / KAIST 제공
전문연구요원제도 혁신을 위한 4개 과기원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왼쪽)과 이기훈 광주과학기술원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 / KAIST 제공
◇ "전문연구요원 제도, ILO 핵심 협약 비준 후에도 문제 없어"

KAIST·GIST·DGIST·UNIST 등 4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은 31일 오후 2시부터 대전에 있는 KAIST 본원 정근모 콘퍼런스홀에서 ‘전문연구요원제도 혁신을 위한 4개 과기원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필요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4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개최하는 토론회에는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 이광형 KAIST 부총장을 비롯해 교수·학생 등 180명쯤이 참석한다. 토론회 기조 발제는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교수)과 이기훈 광주과학기술원(GIST)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가 맡는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로봇공학·빅데이터·생명과학·사물인터넷(IoT) 등 분야 인재 양성이 시급한 국가다.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대학원 설립,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확대 등 인재 양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1973년부터 유지해온 전문연구요원제는 군 복무로 인한 핵심 인재의 연구·경력 단절에 따른 어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제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ILO 제29호는 해석에 따라 전문연구요원제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이 ILO 핵심 협약 비준에 나선 것은 유럽연합(EU)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EU는 노동권 보장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데, 한국이 ILO 핵심 협약 비준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ILO 핵심 협약에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금지를 담은 제29호가 있다. EU는 FTA 사상 최초로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해 한국을 압박 중이다.

한국은 2007년 8월 공익근무가 ‘강제 노동’이 아니라고 판단해 ILO에 질의를 했다. 그런데 ILO 측은 공익근무 역시 협약 적용의 예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병력특례법에 따라 운용하는 ‘전문연구요원’ 역시 ILO 혁심 협약 위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이같은 의견에 대해 "전문연구요원 본인이 현역으로 가기 원할 때 선택권을 주면 협약 위반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례와 특혜 사이’를 주제로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는 김소영 교수는 이재갑 장관과 의견이 비슷하다. 김 교수는 발제문에서 ‘현재 정부가 비준 추진 중인 ILO 강제노동 협약과 관련해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대체복무가 강제근로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대체복무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므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역할’을 주제로 잡은 이기훈 교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네 가지 안보 목표는 미 본토 방어, 번영 제고, 힘을 통한 평화,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이 있으며, 과학기술력의 뒷받침 없이는 네 가지 중 하나도 실현 불가능하다’며 ‘과학기술력이 곧 국방력이고 안보의 핵심인 만큼 전문연구요원 제도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기조발제 후 이어질 토론회 좌장은 김소영 교수가 맡으며, 패널로는 이정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인재정책센터장, 이기훈 교수, 이창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입학처장, 박명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학원총학생회장 등이 참여해 전문연구요원 제도 혁신에 대한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