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채굴 시장의 성황으로 채굴에 사용하는 그래픽카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엔비디아가 일반 그래픽카드 시장과 채굴 시장의 분리에 속도를 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일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신제품에 적용된 해시 레이트 저감 기능에 대한 질문에 이러한 뜻을 밝혔다. 채굴 시장의 수요는 자사의 채굴 전용 GPU로 유도한다. 동시에, 새롭게 출시하는 그래픽카드의 해시 레이트(hash rate, 채굴효율)는 강제로 낮춤으로써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그래픽카드 시장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 엔비디아 간담회 갈무리
젠슨 황 엔비디아 CEO / 엔비디아 간담회 갈무리
2020년 말부터 지난 수개월에 걸쳐 암호화폐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하면서 채굴 시장도 덩달아 활황세가 이어졌다. 일반 개인용, 게임용으로 선보인 그래픽카드가 대거 채굴에 동원됐다.

게다가 그래픽카드가 돈이 된다는 인식에 채굴업계는 물론 전문 리셀러까지 시장에 뛰어들어, 매크로 등을 이용해 제품을 쓸어 담으면서 유통 가격도 정가의 2배~3배까지 치솟았다. 그 때문에 정작 일반 게이머나 인공지능(AI) 연구개발을 위해 GPU가 필요한 학생들이나 학교의 중소규모 연구실은 그래픽카드 구매를 거의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젠슨 황 CEO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가격 안정을 위해 꾸준히 MSRP(권장 소매 가격)를 유지하면서 충분한 물량의 GPU를 공급해도, 정작 그래픽카드 완제품이 유통시장에 공급되는 단계에서는 가격이 수 배로 껑충 뛰어버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결국 지포스 RTX 3060을 시작으로, 채굴 효율을 강제로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춘 ‘LHR(낮은 해시 레이트)’ 제품과 채굴 전용 GPU인 ‘CMP(Cryptocurrency Mining Processor, 암호화폐 마이닝 프로세서)’ 제품을 선보인다. 이후 선보이는 신제품도 반도체 레벨에서 채굴 효율을 낮추는 조치를 하는 등 ‘강경책’을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엔비디아의 채굴전용 CMP 제품의 GPU 코어 모습 /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채굴전용 CMP 제품의 GPU 코어 모습 /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우리는 지포스 그래픽카드와 게이머들을 (채굴시장으로부터) 지키고 싶다. 새로 내놓은 그래픽카드의 해시 레이트를 낮추고, CMP 제품을 따로 선보인 것도 그런 이유"라며 "마이닝 시장이 워낙 변동성이 크지만, 앞으로는 CMP처럼 채굴 전용 제품 위주로 분리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적용한 하드웨어적인 채굴 효율 저감(LHR) 기능도 일시적인 방침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출시하는 모든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카드에 기본적인 기능으로 계속 적용할 방침이다.

젠슨 황 CEO는 "채굴 제한과는 별개로 그래픽카드 가격이 당장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통제와 제재를 강화해 잠시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LHR 제품이나 CMP 제품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카드의 시중 가격도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 엔비디아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지포스 나우(Geforce Now)’를 예를 들며 빠르게 성장 중인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그래픽카드 대란의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엔비디아가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지포스 나우 같은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의 지연은 줄어들고 화질과 퍼포먼스는 더욱 향상할 수 있다. 즉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없어도 각종 고사양 게임을 고품질 영상으로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만큼, 채굴 대란 등의 영향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젠슨 황 CEO는 설명했다.

젠슨 황 CEO는 "지포스 30시리즈의 새로운 플래그십 제품을 선보이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고성능 게이밍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제품군을 보유하게 됐다"라며 "한편으로, 데이터센터 시장의 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커지고, 컴퓨팅 환경도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그 양쪽 모두의 선도기업으로서 엔비디아의 활약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