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 ‘검정고무신’에 비극이 발생했다. 원작자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해 분쟁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다.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데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IT조선은 저작권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대책위는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정책·제도와 저작권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저작권법만 개정됐어도 이우영 작가의 경우와 같은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특히 법 개정이 늦어진 원인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와 늑장 대응을 지적한다. 문체부가 온갖 핑계로 저작권법 개정을 늦어졌다는 것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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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계 10개 단체는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대책위는 앞으로 이우영 작가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만화계 표준계약서 개정, 저작권법·만화진흥법·예술인권리보장법 등이 핵심이다.

이 중 저작권법 개정 요구는 수년간 이어진 문제다. 당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마다 요구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두 가지다. ‘계약의 공정성 보장’과 ‘공정한 보상’이다. 이는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법인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표준계약서 내용을 개정하고 보강하거나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고 해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면 실효성이 없다"며 "저작권법이 창작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창작자 단체, 공정한 보상 도입·불공정 계약 방지

2014년 그림책 ‘구름빵’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공정한 보상’이 공론화됐다. 유아용 그림책 구름빵 작가가 저작권 명목으로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한 보상은 창작자의 저작물로 유통자가 수익을 냈을 때 그에 맞는 보상을 주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배재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4월 창작자가 유통자에 ‘공정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배 전 의원의 구름빵 보호법은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뒤 이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11월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노 의원은 임기만료로 폐기된 이 개정안을 2020년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또 21대 국회는 노웅래 의원안을 비롯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등 구름빵 보호법과 유사한 총 5건의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국회의 늑장 대응, 저작권법 개정 발목

문체부가 직접 저작권법 전부개정안 마련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체부 저작권법 개정안은 작품별 차별대우 논란이 불거졌다. 2020년 당시 문체부 개정안은 추가 보상을 청구할 시점을 모호하게 규정해 문제가 됐다. 영상 창작자, 영상 실연자의 추가 보상 청구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예외 조항도 영상과 다른 콘텐츠를 차별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체부는 공청회를 열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후 문체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업계는 21대 국회가 출범한 2020년부터 매년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문체부가 사실관계도 조사하지 않고 손놓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국회는 이런 문체부의 대응에 날선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문체부가 올해 2월 9일 진행된 저작권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저작권법 개정안 심의를 위한 연구용역이 올해 초부터 진행돼 빠르면 5월쯤 마무리된다"고 밝힌 것이 결정적이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계에서는 저작권법이 개정되면 사업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런 지적이 맞는지 문체부가 조사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으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역시 "문체부가 업계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며 "연구용역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니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하라"고 촉구했다.

문체부는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문체부가 움직인 것은 검정고무신 사태가 벌어지고 난 다음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저작권법 개정 운동을 8년 동안 해 왔는데 문체부가 온갖 이유를 대며 8년 내내 사실상 막았다"며 "문체부는 만화는 해주는데 영상은 해줄 수 없다거나 전부 개정하려면 힘들다는 식으로 핑계만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