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반도체 사업 합산 성적이 8조 5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2분기 역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결국 순차적으로 감산을 공식화 했다. 업황 반등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결단이다.

양사는 이것만은 예외적으로 감산이 아닌 초격차 확보에 돌입했다. 고부가가치, 고성능 메모리 제품 ‘HBM(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이 그 대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 삼성전자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제품이다. 인공지능(AI)과 딥러닝 분야 데이터 처리량이 증가해 높은 연산 기능을 요구하는 데이터센터 등이 늘어나면서 보급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AI, 5G, 전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처럼 고성능·저전력 특성을 갖춘 반도체 패키지 기술이 요구되고 있으며, 10나노 미만 반도체 회로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첨단 패키지 기술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HBM 공급 선두주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3위 마이크론은 HBM 대신 그래픽용 DDR(GDDR) 생산에 머무르다 지난해서야 개발에 나섰다.

챗GPT에 활용되는 엔비디아의 GPU에도 HBM을 공급할 정도로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은 압도적 수준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18일 보고서에서 AI 서버 수요의 급성장에 힘입어 올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3개사의 HBM 시장점유율은 각각 50%, 40%, 10%로 추정된다.

HBM 점유율 1위 SK하이닉스는 신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다. 최근 세계 최초로 D램 단품 칩 12개를 수직 적층해 현존 최고 용량인 24기가바이트(GB)를 구현한 ‘HBM3’ 신제품을 개발했다. HBM3 24GB 신제품 샘플을 다수 글로벌 고객사에 제공해 성능 검증을 받는 중이다.

HBM3는 1세대(HBM), 2세대(HBM2), 3세대(HBM2E)에 이은 4세대 제품이다. 기존 HBM3의 최대 용량은 D램 단품 칩 8개를 수직 적층한 16GB였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3월 29일 오전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SK하이닉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3월 29일 오전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SK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은 3월 29일 이천 본사 주총 현장에서도 HBM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박 부회장은 "미래의 컴퓨팅 환경이 메모리가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HBM 기술을 개발했다"며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업계 최초로 차세대 제품 HBM3를 성공적으로 양산했다"고 밝혔다.

이어 "AI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HBM은 HBM3A, HBM4 등 차세대 제품의 적기 개발을 통해 넘버원(NO.1) 기술 경쟁력을 앞으로도 지속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연산 능력에 초점을 맞춘 HBM에 집중한다. 2월 개발한 HBM-PIM(Processing-in-Memory)이 대표적이다.

HBM-PIM은 메모리반도체와 AI프로세서를 하나로 결합한 제품이다. 기존 GPU 가속기보다 성능이 평균 2배 정도 높고, 에너지 소모는 절반이다. GPU 업계 2위인 AMD 제품에 사용된다.

이재용 회장은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와 온양캠퍼스를 찾아 HBM, WLP(Wafer Level Package) 등 첨단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 생산라인을 직접 살펴봤다.

이 회장은 당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