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유상(유료) 법률사무를 제공할 수 있는 건 변호사뿐입니다. 리걸테크는 일반인뿐 아니라 변호사의 활동 환경과 영업방식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리걸테크 진흥을 위한 법률서비스법은 독일의 법률서비스법이 모델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법률서비스법은 기존의 국내법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국내 사정에 맞춰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한 새 리걸테크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을 위한 법률서비스법 입법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을 위한 법률서비스법 입법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정신동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일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을 위한 법률서비스법 입법 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권칠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했다.

정신동 교수는 "다른 법을 개정하지 않고 변호사가 아닌 이가 유상의 법률 사무를 제공할 수 있게 하려면 리걸테크 산업에 관한 특별법이 필요하다"며 "대신 특별법이 서비스 이용자별로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 개정 대신 특별법을 제정하는 배경은 법 개정도 제정만큼 오래 걸려서다. 개정해야 하는 법도 많다. 독일 법률서비스법이 변호사가 아닌 이도 기술을 이용해 유상의 법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분야는 채권추심, 사회보험 및 법정연금 자문, 외국법 자문 등 세 가지다.

한국은 이런 분야를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외국법자문사 특별법 등으로 규율한다. 리걸테크에 독일과 같은 범위를 허용하려고만 해도 여러 법을 하나하나 전부 개정해야 되는 셈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면 이 같은 절차를 단축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대신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률용어를 다르게 해야 한다고 봤다. 리걸테크가 다룰 수 있는 범위와 권한을 이용자별로 다르게 하자는 것이다.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면 ‘법률 서비스’라 지칭한다. 이런 법률 서비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보다 많은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일반인이 대상인 리걸테크 서비스는 ‘정보제공’이라는 용어를 쓰며 이용자의 직업 및 업무 수행을 보조하는 수준으로 제공한다.

리걸테크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률서비스법의 주무부처를 법무부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변협이 법무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단체여서다. 법무부가 법률서비스법의 주무부처가 되면 변협과 리걸테크를 모두 법무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된다.

박재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서비스법이 제정돼도 리걸테크 산업은 변협에서 그동안 감독해온 부분과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법을 만들 때부터 변협의 권한을 벗어나는 부분을 확실히 해줘야 리걸테크 업체들이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법률서비스법의 입법 방향이 포지티브 규제로 갈지 네거티브 규제로 갈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포지티브 규제는 일정 영역만 법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나머지는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 항목만 법에 규정하고 금지 항목이 아닌 부분은 모두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제 방식이다.

함상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리걸테크 관련 입법을 한다면 초기에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제하고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 네거티브 규제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독일의 법률서비스법도 채권추심이나 연금 자문, 외국법 자문 같은 분야만 변호사가 아닌 이의 법률 서비스를 허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 서비스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법률적 사건과 관련될 수 있다"며 "처음부터 테크(기술)에 중점을 두고 많은 것을 허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가 사람을 바둑으로 이기지 못할 것 같았지만 알파고가 등장했듯이 기술의 변화로 나타나는 현상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리걸테크 같은 법률 플랫폼이 한국의 법률 시장에 들어온 것은 막을 수 없는 기정사실이지만 좋은 규제는 살리고 좋지 않은 규제는 제거하면서 산업을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