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는 상품 구입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특히 가격과 성능 정보가 상세히 공개된 PC 시장은 더욱 심하다. 그런 PC 시장에 소비전력 대비 성능을 뜻하는 ‘전성비’가 주목 받고 있다. ‘전성비’가 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지 그 원인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IT조선 최용석] 자동차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휘발유나 경유 같은 ‘연료’가 필요하다. 차 값만 수억이 넘는 고성능 ‘슈퍼카’라도 연료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첨단 IT 기술의 집약체인 PC 역시 작동하기 위한 ‘전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그만큼 PC에 생명을 더하는 파워서플라이(전원공급장치, 이하 파워)는 CPU나 그래픽카드, 메인보드에 못지않은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최근 나오는 ‘브랜드’ 파워들은 최소한의 안정성과 표기에 준하는 출력 등을 기본으로 갖추고 나온다. 적당한 제품을 상표만 붙여다 팔던 과거와 달리, ‘KC자율안전인증’과 같은 필수 인증제도의 도입으로 정상 제품이라면 최소한의 기준은 지켜야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조사들은 제품 차별화를 위해 ‘가격’이나 무상보증 기간 외에도 장점으로 내세울 새로운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낭비와 관련이 깊은 ‘에너지 효율(이하 효율)’이다.

 

 

높은 효율=전기 요금 절감

 

PC를 포함한 IT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직류(DC) 전원을 사용한다. 하지만 가정이나 사업장에 공급되는 전원은 주로 교류(AC) 방식이다. 따라서 교류 전원을 직류 전원으로 변환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PC에서는 그 역할을 파워가 담당하며, 가정용 220V 교류 전원을 PC에서 사용하는 12V, 5V, 3.3V의 직류전원으로 바꿔준다.

 

교류에서 직류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는 낭비되는 전력, 즉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현재 기술로는 완벽하게 막을 수 없는 요소다. 교류와 직류 모두 ‘전기’라는 점은 같지만 그 특성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파워 제조사들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손실이 클수록 같은 출력을 내는데 더 많은 전력이 소비되고, 이는 전기요금(비용) 상승과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파워의 ‘효율’은 입력된 교류 전원의 몇 %가 직류로 변환되느냐를 나타내는 척도다. 예를 들어 효율이 70%라면 입력된 교류 전원의 70%를 직류 전원으로 변환해 제공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효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손실이 적고 에너지 낭비가 적게 된다.

 

▲ 시중에 판매중인 파워 중 평균 효율이 80% 이상인 제품이 크게 늘었다.

 

요즘 시중에 판매중인 브랜드 파워들의 상당수가 평균 효율이 80%를 넘는 편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 효율이 80% 이상이면 고효율 제품으로 인정받은 것을 고려하면 요즘 파워는 상향 평준화된 셈이다. 일부 제품들은 효율이 90%를 넘는 제품도 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가정용 전원에도 쓰는 양에 따라 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누진세’가 적용되는 국가 중 하나다. 같은 PC를 사용해도 낭비 전력이 줄면 그만큼 전기 사용량 자체를 줄일 수 있고, 이는 전기 요금 절감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레 고효율 제품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또 전기 절약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저비용 고효율 전력 생산원인 원자력발전이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각국의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고, 이는 자연스레 소비 전력 절감 운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절감과 에너지 절감이라는 차원에서 ‘효율’은 반드시 따져야 할 요소다.

 

 

고효율 파워에 ‘가성비’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

 

파워에 있어 ‘고효율’은 그만큼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고효율을 추구할수록 파워의 가성비는 오히려 눈에 띄게 떨어진다.

 

사실 제조사 입장에서 파워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파워는 각종 전기 관련 부품과 다수의 서로 다른 회로의 조합으로 구성되는데, 효율을 포함한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품질의 부품과 더욱 복잡한 회로 설계가 요구된다. 즉 ‘저렴한 비용’으로는 높은 효율을 달성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파워에서 ‘가성비’만 추구하면 나오는 결과는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과거 PC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묻지마 파워’ ‘뻥파워’ 사태가 그것이다.

 

당시 수많은 유통업체들이 부실한 구성에 싸구려 부품을 사용한 이름없는 파워 제품들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시장에 대거 풀었다. 이들 ‘가성비만 좋은’ 파워들은 쉽게 고장나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줬고, 심하면 파워 자체가 타버리거나 부품이 터져나가면서 PC 자체를 못쓰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일부 하드웨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파워 제품들의 성능을 검증했던 ‘파워 사태’가 몇 차례 반복되자 소비자들은 파워만큼은 무작정 가성비만 따지는 것이 마냥 옳은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그 이후 다른 부품은 몰라도 파워만큼은 돈을 아끼지 말자는 풍조가 생겼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고효율 제품임을 뜻하는 '80PLUS' 인증은 파워의 기본 품질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고효율’은 파워의 기본 품질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된 요소라 할 수 있다. 표기된 스펙에 맞춰 검증된 부품과 제대로 된 설계를 적용하면 효율 또한 자연스럽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80플러스(80PLUS)’라는 파워의 효율 인증이 마케팅 요소로 떠오른 것도 그만큼 효율 자체가 파워의 품질과 직결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효율이 90%를 넘는 ‘골드’급 제품들의 경우는 비싼 고급 부품을 가득 채워넣어서 일반 제품에 비해 수 배 이상 비싼 경우가 흔하다.

 

파워는 전원을 소비하는 제품이 아닌, 공급하는 부품이라는 것에서 소비전력 대비 성능을 뜻하는 ‘전성비’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같은 성능(출력)을 발휘하면서 낭비되는 전력을 최소화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파워의 ‘효율’과 전성비가 추구하는 바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게다가 전성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만큼의 안정적인 전원 공급은 당연히 필수다. PC 시장이 갈수록 저전력·전성비를 중요시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만큼, 파워에서 ‘효율’에 더욱 주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최용석 기자 rpc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