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핀테크 시대① 현금이 사라진다

김형원 기자
입력 2015.05.25 09:28 수정 2015.05.25 09:45

국가별 현금 사용률, 스웨덴, 일본, 덴마크 등은 현금 사용률이 줄거나 비슷한 반면 한국은 5만원권이 제작되기 시작한 2009년을 기점으로 현금 사용이 더 늘어났다. (표=블룸버그)
빠른 시간 내에 현금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상거래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현금 없애기가 중요한 금융정책으로 떠올랐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이미 국가적으로 상거래에서 현금을 줄이는 정책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5월 6일에 상정된 법안인 덴마크의 모든 상점에서 모바일, 신용카드 결제만 허용하자는 '현금거래 금지법안'이 통과된다면, 내년 1월부터 덴마크의 식당과 주유소, 옷가게 등에서는 현금 결제가 사라진다. 이 법안은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의견은 적은 편이다. 



덴마크 재무부에 의하면 ‘소매점이 현금을 받는 방식은 경비와 감시 시스템에 상당한 비용을 쓰게 되고 고객에게 거스름돈을 주는 시간 등으로 인해 인건비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줄이면 비즈니스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조치가 실행되면 덴마크의 소매점과 식당, 주유소는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전자 결제 수단이 없는 고객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덴마크에서는 상거래 결제의 85% 가량이 신용카드로만 이뤄지고, 국민의 절반 정도가 모바일 결제를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덴마크 중앙은행은 이미 2014년에 지폐와 동전을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현금 없는 국가의 대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줄어들고 있는 현금결재 (사진= bloomberg.com)


2011년 국가별 현금 사용률 (자료= McKinsey)


현금 유통을 근절하면 국내총생산(GDP)을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는 “현금의 발행, 수거, 폐기 등에는 상당한 양의 행정적, 재정적 비용이 든다”고 밝히면서 “현금을 없애는 것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11년 사이 GDP에서 현금 유통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의 경우 0.47%, 러시아는 GDP의 1.10%나 됐고 비율이 가장 적은 국가는 핀란드로 0.1%였다. 현금을 없애서 가장 크게 효과를 보는 점은 금융 생산성 증가겠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현금으로 오가는 지하경제를 차단함으로 가시적으로 GDP가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맥킨지는 “지하경제에서 움직이는 현금은 세금을 매길 수 없기 때문에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며 현금 유통이 더 많은 나라일수록 지하경제가 더 발달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금 유통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진 나이지리아의 GDP와 지하경제 예상 비율은 63%로 가장 높았다. 러시아와 튀니지, 브라질, 멕시코가 뒤를 이었고 부끄럽지만 한국도 27%로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GDP에서 현금 유통이 차지하는 비율 (자료= McKinsey)


현금이 결제수단 기능을 상당 부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미국 달러다. 2012년 회계연도에 미국은 3590억 달러 가치의 지폐를 인쇄했다. 이 중 100달러권은 3030억 달러였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100달러 지폐의 60%가 해외에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내 소매점 거래에서 지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엔 36%, 10년이 지난 2012년에는 약 29%에 불과했다. 대신 크레딧카드와 데빗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소매 거래의 30%를 차지했다. 중산층 이상의 미국인에게서는 현금 사용률이 더욱 적어서 연소득 6만 달러 이상 가구에서의 현금 사용은 전체 지출의 2%에 불과했다.   



연방준비제도가 발표한 2015년 3월 현재 현금과 요구불 예금(Demand Deposit)을 합한 통화량은 1조3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이고 이 가운데 100달러짜리가 1조 달러다. 현금 통화량을 미국 가구 수로 나누면 가구당 현금은 1만1천 달러로 7년 전인 2008년 7천 달러에서 4천 달러 가량 더 늘은 것이다. 



하지만 현금이 이렇게 많은데 실제로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현금의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 그렇다면 그 현금은 어디로 갔을까? 100달러짜리 신권은 마약조직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가 힘들어 그만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미국에서 2020년까지 소매점 거래의 현금 비중이 26%로 줄 것으로 전망했다. 현금 사용은 대부분 은행계좌가 없는 저소득층이나 세금 납부를 줄이기 위해 판매 및 구매 사실을 숨기려는 이들일 것으로 예상됐다. 맥킨지는 현재의 흐름이 계속되면 30년 뒤에는 소매점 거래에서 현금은 10%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2009년 5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현금 사용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 및 안전자산 선호성향 강화 등의 영향으로 만원권과 오만원권을 합한 고액권 비중이 완만히 상승하고 저액권 및 주화의 비중은 다소 하락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에 따르면 비현금 지급수단이 통용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경제주체들이 예비적 거래 목적으로 명목소득의 일정 비율을 현금으로 보유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현금은 실물 형태의 결제통화로 거래에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킨지가 지적했듯이 현금 거래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지하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의해 현금이 도태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겠지만 제도적인 차원에서 지하경제를 규제하려면 비현금거래를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뉴욕(미국)=이상준 통신원 director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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