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프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미군의 초경량전투차량 사업

현재 미군의 군용차의 대명사는 '험비'다. 험비는 HMMWV, 즉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 다목적 차량)이라는 뜻으로, 유사한 발음을 따서 험비라고 불렀다. 험비는 1985년 등장한 이후에 무려 20년간 왕좌를 지켜왔다. 46cm의 수직장애물에 76cm 깊이의 참호도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야말로 '길이어도 좋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를 몸소 시전했던 차량이 험비였다.

미군 군용차의 대명사, 험비는 이제 천천히 퇴역을 시작한다.
미군 군용차의 대명사, 험비는 이제 천천히 퇴역을 시작한다.
이런 험비도 사용한지 20년이 되다보니 슬슬 자리를 뒤로 물려주게 되었다. 험비의 후속주자로는 JLTV라는 게 등장했다. 우리 말로 풀면 합동경량전술차량(Joint Light Tactical Vehicle)인데, 2015년 오시코쉬라는 회사의 L-ATV가 선정되어서 앞으로 험비의 자리를 대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JLTV는 말 그대로 '경량'차량이다. 경량차량이라면서 무게가 무려 6.4톤에 이른다. 적의 소화기 공격은 물론이고, 대전차지뢰나 급조폭발물 공격에서까지 살아남으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경량' 차량이 아니라 경장갑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경량' 전술차량은 자신이 달리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헬기나 비행기에 실려서 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그런데 JLTV는 너무 무거워서 CH-47 헬기에 매달아 나르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대략 망했어요"인 상황이 된 셈이다.
험비(좌)와 JLTV(우)의 사이즈 비교. JLTV는 경장갑차급이다.
험비(좌)와 JLTV(우)의 사이즈 비교. JLTV는 경장갑차급이다.
◆ 노새에서 픽업트럭까지

사실 험비도 그리 가벼운 차는 아니었다. 초기형으로 방탄능력이 없는 M998이 2.4톤, 후기형인 방탄 험비 M1113이 2.9톤에 이르렀다. 원래 그 크기는 CH-47 시누크 헬리콥터 안에 실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말이 내부에 싣는 것이지, 차의 사이드미러나 무장터렛 등을 뜯어내어야 억지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굳이 내부에 안 집어넣고 헬기 외부에 슬링으로 끌어다 놓는 게 더 신속하고 편안할 수는 있어서 실전에서 활용이 가능 하긴 했다.

그러나 결론 하나다. 더욱 가벼운 차량이 필요했다. 특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은 험난한 산악지형을 소수의 병력으로 극복해야만 했는데, 여기서 제일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수송수단이었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 무엇이 등장했을까? 바로 노새였다. 2001년 10월, 9.11 테러 직후 아프간에 침투한 특수부대원들은 조랑말이나 노새를 타고 산악지형을 극복하면서 탈레반과 싸워나갔다.

2001년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교전 중인 미군 특수부대원.
2001년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교전 중인 미군 특수부대원.
그러나 노새만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미군을 포함한 해외의 군인들은 이것저것 합쳐 대략 45kg 정도의 군장을 짊어지게 되는데, 이게 행군하기 만만한 무게가 아니다. 게다가 공용화기나 광대역 무전기 등 장비까지 부가되면 개인군장이 60kg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적진에 침투해 장기간 독립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특수부대의 경우에는 개인이 떠맡아야만 하는 짐이 100kg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탈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미군 특수부대 전진기지에 도열한 차량들 가운데 도요타 힐럭스 픽업트럭(가운데 남색)이 보인다.
미군 특수부대 전진기지에 도열한 차량들 가운데 도요타 힐럭스 픽업트럭(가운데 남색)이 보인다.
그래서 미군 특수부대에는 NSTV라는 말이 있다. Non Standard Tactical Vehicle (표준 외 전술차량), 즉 일반상용차량이라는 말이다. 아프간에 최초로 침투했던 미군 특수부대는, 애초에는 험비 같은 차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당연히 MH-47 내부에 실을 수 없다보니 가지고 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에서 아프간 반군이 사용하던 도요타 랜드크루저나 힐룩스 트럭, 아니면 러시아제 우아즈 지프를 돈 주고 사서 몰고 다녔다. 그러나 전쟁터 현장에서 사 온 차들은 몇 달을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예 미국에서 F-150 픽업트럭 같은 것을 공수해와서 활용하기도 했다.

◆ ATV 이후의 대안은

그러나 상용트럭도 역시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CH-47 헬기에서 운용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활용되던 것은 쿼드바이크였다. 최악의 아프간 지형에서 아무리 산악용이라도 오토바이는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쿼드바이크를 활용하면 거친 길에서도 어느 정도 중량을 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쿼드바이크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혼자만 타고 다니는 것이다.

미군은 이미 아프간-이라크 대테러전쟁 초기부터 쿼드바이크를 투입해왔다.
미군은 이미 아프간-이라크 대테러전쟁 초기부터 쿼드바이크를 투입해왔다.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한 명이 운전하는 사이 또 다른 사람은 사격이라도 할 수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2인승 ATV들이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레저용으로 나왔던 ATV들이 군의 요구에 맞도록 엔진의 토크나 마력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2인승 ATV가 정착하자 4인승도 곧 뒤를 따랐다. 사실 2인승에서 약 60cm 정도를 늘리고 좌석 2개를 더 넣은 게 4인승 ATV라 별 차이도 없다.

그런데 ATV에는 한계가 있다. 역시 탑재중량과 공간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성공적인 군용 4인승 ATV인 폴라리스 MRZR 4의 경우, 최대 탑재중량이 680kg 정도였다. 후방의 짐칸을 바꾸면 2명이 더 앉아 6명이 탈 수 있는데, 간신히 개인 군장을 꾸려서 탈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탑재중량이 이보다는 2배 이상은 나오면서 팀원 전원을 태울 수 있는 차량에 대한 필요가 높아졌다.

현재 4인승ATV인 MRZR4는 미군 내에서 빠르고 널리 보급되고 있다.
현재 4인승ATV인 MRZR4는 미군 내에서 빠르고 널리 보급되고 있다.
그래서 아프간과 이라크전쟁이 한참 정리될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차량에 대한 개념이 모여서 ULCV(Ultra Light Combat Vehicle; 초경량 전투차량)에 대한 개념이 만들어졌다. 즉 전쟁 초기 적진에 침투해들어간 부대가 사용할 수 있는 초경량 전투차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즉 최대 9명까지 보병분대원이 전원 탑승할 수 있는 경량차량을 만들어서 CH-47 헬기 내부에 싣고 운반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일단 사람과 차량이 합쳐서 3.6톤 미만이 되어야 하고, 차량 중량으로만 치면 2톤 정도가 되어야 한다.

미군은 9명의 분대원을 탑승시키고 CH-47 시누크헬기에 탑승이 가능한 전술차량을 요구하고 있다.
미군은 9명의 분대원을 탑승시키고 CH-47 시누크헬기에 탑승이 가능한 전술차량을 요구하고 있다.
◆ 21세기의 지프는 무얼까?

사실 ULCV 사업은 미군에게 제일 급한 사업이었다. 2014년경 사업이 구체화되자마자 2016년부터는 실전배치하겠다고 계획했다. 당장 여러업체들이 달려들었다. ATV의 강자인 폴라리스는 물론이고, 보잉, 제너럴 다이나믹스, 록히드마틴 같은 유수의 업체부터, 바이퍼 아담스, 헨드릭스 다이나믹스 등 중소전문기업들까지 달려들었다. 모델들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현재 ULCV사업은 GMV(Ground Mobility Vehicle)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올해 선정을 마치고 구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폴라리스의 대거.
폴라리스의 대거.
우선 경험이 많은 폴라리스는 대거(Dagor)라는 차량을 내놓았다. MRZR의 경험을 살려 ATV 스타일의 바디에 9명이 전부 탑승할 수 있게 됐다. 보잉사는 팬텀배져(Phantom Badger)라는 차량을 선보였는데, 폭이 좁아서 CH-47 뿐 아니라 V-22 오스프리 항공기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Flyer-72라고 특수작전에 특화된 차량을 내놓았다. 바이퍼 아담스가 내놓은 VX-4는 병력수송에서 환자후송까지 마치 레고처럼 다양하게 수납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잉의 팬텀배져는 V-22에도 탑재가 가능하다.
보잉의 팬텀배져는 V-22에도 탑재가 가능하다.
기존의 상용차를 개조한 모델들도 있다. 우선 록히드마틴은 영국의 수파캣이라는 특수차량제작사에서 만든 LRV400이라는 차량을 가지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LRV400은 랜드로버의 군용지프인 '디펜더'를 다카르랠리용으로 개조한 '와일드캣'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차량이다. 게다가 한 군데 더, 헨드릭스 다이나믹스는 아예 크라이슬러그룹 지프의 루비콘을 개조한 '코만도 지프'라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지프의 부활이다.

지프를 개조한 모델도 GMV사업에 후보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지프의 귀환인 셈이다.
지프를 개조한 모델도 GMV사업에 후보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지프의 귀환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누볐던 지프가 그랬다. 겨우 1톤을 조금 넘는 무게에 전체길이는 3.3m에 차폭은 1.5m로, 수송기는 물론 글라이더까지도 손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가볍지만 힘좋고 적당한 인원을 나를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이러한 지프에 임무가 늘어나면서 험비로 덩치가 커졌고, 전쟁터가 더 위험해지자 장갑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JLTV가 되었다가,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새로운 차량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프에서 험비를 거쳐 JLTV까지 갔다가 다시 지프로 돌아온 셈이다.

◆ 우리의 선택은

우리 군은 베트남전 미군처럼 1/4톤-5/4톤-2와1/2톤을 운용해오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한국형 험비의 채용을 공식화했다. 1980년대 미국의 발걸음을 따라간다면 기존의 K131 '군토나'와 K311 '닷지'를 모두 한국형 험비로 바꾸게 될 터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과거 지프로 불리던 1/4톤 군용트럭은 소형차량으로서 나름의 가치를 갖는 경우도 많다. 지휘차량의 경우에는 렉스턴이나 코란도스포츠 같은 상용차량들을 구매하기도 했다. 물론 과연 전방지역에서 적합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또한 공군의 ROMAD 같은 부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상용 SUV를 활용해왔다. 최근 모 특수부대는 상용픽업트럭을 주요업무용차량으로 쓰기도 한다.

특히 CH-47의 내부에 수납하거나 UH-60 헬기의 외부에 슬링 장착이 가능한 초소형전술차량은, 소부대의 전투력과 이동능력 자체를 바꿔준다. 화력 및 기동장비와 유류가 부족한 북한은 경보병부대로 기동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그러나 병력 숫자가 줄어들 우리 군은 모든 분대가 차량화하고 무장을 늘림으로써 더 많은 적군에 대항하고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군 특수부대에는 Fox라는 특수전 정찰차량이 있다.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의 교훈을 배워, 장거리 전략정찰 및 특수부대의 기동전을 다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전방 GOP 지역에서는 ATV를 활용한 작전들이 시도된 바도 있다. 이렇듯 의미 있는 노력들이 모여서, 한국형 험비든, GMV든 ATV이든 적군을 압도할 수 있는 기동력과 화력을 보유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군 특수부대가 보유한 것과 동일한 Fox 고기동전술차량은 영국 SAS도 시리아에서 운용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군 특수부대가 보유한 것과 동일한 Fox 고기동전술차량은 영국 SAS도 시리아에서 운용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진 양욱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과 국방부·방사청·합참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으며 인텔엣지 대표이사로 역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