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호주주식거래소(이하 ASX)의 면면을 살펴봤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이번 칼럼, ASX가 궁극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인지를 다루기 위해서였다.

ASX는 분산원장 기반 주식거래 플랫폼을"more efficient clearing, settlement and other post-trade services through improved record keeping, reduced reconciliation, more timely transactions, and better quality data."으로 설명했다.

번역하면 "▲기록관리를 개선하고 ▲조정과정을 감축하고 ▲증권의 매매를 더 적시에 (투자자들이 원하는 때에) 가능하게 하고 ▲데이터의 질을 높여 청산·결제와 기타 거래 이후 서비스들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정도가 된다.

이 문장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ASX의 분산원장 기반 주식거래 플랫폼은 '증권거래 청산뿐 아니라 결제, 거래 이후 서비스'까지 모두 담당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증권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거래된다. 거래 방법도 온라인 혹은 전화 거래가 일반적이어서 트레이더가 실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거래 후(거래 가격과 수량이 결정된 후), 백오피스에서 거래의 세부 내용을 확인하고 거래 당사자간 비교를 거쳐 실수가 없는지 확인한다.

이후 거래를 승인하고, 증권 소유권을 교환한 후 증권과 현금을 교환 처리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래 이후 서비스(post-trade services)'라고 부른다.

프로젝트 메디치(Project Medici)를 비롯해 블록체인 기반 증권거래 플랫폼을 개발하겠다고 제안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청산'을 블록체인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반면, 청산뿐 아니라 더 다양한 증권거래 부문을 분산원장으로 처리한다는 ASX의 계획은 이례적이고 야심 차다고도, 혹은 비현실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 블록체인은(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청산 시스템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고 비싸다. 블록체인 기술 발전 혹은 양자컴퓨터가 이를 해소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시기에는 기존 청산 시스템이 더 빠르고 저렴해질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엄연히 느리고 비싸다.

그렇다면, ASX는 어떻게 증권거래 청산뿐 아니라 결제, 거래 이후 서비스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일까? 이들이 말하는 '효율'은 처리속도와 비용이 아닌, 다른 측면의 효율이다. 실수와 조정 과정을 감소, 전체 거래 플랫폼의 동작 효율 자체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ASX가 분산원장에서 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꾸준히 논의된 '청산의 투명성'뿐이 아니라, '거래 후 진행되는 백오피스의 업무'를 줄여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분산원장의 단점인 고비용, 느린 속도를 감수하더라도 이익이라 할 것이다.

ASX의 계획은 옳을까? 이 부분에 대해 아직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ASX가 아직 자신들의 플랫폼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는 필자의 공동연구팀도 ASX의 플랫폼을 매우 궁금해하지만, ASX는 전혀 대답이 없다. 'ASX가 원하는 수준의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증권거래와 금융시장을 잘 모르는 개발사가 개발을 주도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금융시장에서의 효율·정확성·투명성의 개념, 혹은 청산과 결제과정을 잘 모르면 이런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필자는 분산원장 기반 주식거래 플랫폼을 직접 검증해 보기로 하고, 현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R&D 영역 안에서, 대규모 개발 없이 분산원장 기반 주식거래 플랫폼의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보며 느낀 것은 '블록체인의 장점이 아닌 다른(예를 들어 규제완화) 요인의 장점을 블록체인에 가져다 붙여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블록체인은 장부를 분산해서 기록하고 청산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블록체인 기반 장부에 기록되는 정보에 오류가 있으면 당연히 결과물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술품 또는 다이아몬드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위작이나 복제품을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 기록 시점에서 위작이나 복제품을 '진품으로 기록'하면 블록체인은 이를 검증하지 못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평가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왜 블록체인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단순히 '투명성 향상', '거래기록의 불가역성'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이익(효용)이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시스템 구현으로 보여주면 된다. 시스템 구현이 어려우면 최소한 논리적, 합리적으로 유추해 논의하고 검증해야 한다.

ASX는 분산원장의 장단점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장점이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플랫폼을 제작한 것이다. 물론, 결과물로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는 단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이용한 증권거래 플랫폼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이 기술을 활용할 때 얻을 이익 혹은 손실을 논의할 수 있어서다.

다음 칼럼에서는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이용한 증권거래 플랫폼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또 머지 않은 미래에 필자가 직접 검증한 분산원장 기반 주식 플랫폼 프로젝트의 결과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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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 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