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가 2019년 새해에는 ‘기술혁신 1번가’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해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우버 등 실리콘밸리 기업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고위직 성추문, 자율주행자의 사망사고 등 각종 스캔들과 논란으로 얼룩진 한해를 보냈다.

◇ ‘성추행' 고위간부 감싼 구글, 전세계 수만명 직원 항의 파업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 전 구글 부사장이 성 추문으로 구글에서 퇴출당한 이후에도 구글로부터 매달 22억원 씩, 4년간 총 1000억원을 ‘퇴출세' 명목으로 받아왔다는 사실이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드러났다.

NYT는 앤디 루빈이 구글을 떠난 이유가 내연 관계였던 부하 직원에게 구강 성행위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앤디 루빈이 구글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드러난 바 없었다.

이와 함께 NYT는 성 추문을 저지르고도 구글을 떠나지 않은 고위 간부가 알파벳X의 룬(Loon) 프로젝트를 설계한 리처드 드볼이라고 폭로했다. 룬 프로젝트는 상공에 인터넷 통신 공급 기기를 단 열기구를 띄워 소외된 지역에 무료 인터넷을 공급하겠다는 구글의 글로벌 무선인터넷망 구축 프로젝트다.

사내 문화에 반발하며 11월 구글 본사 직원을 포함한 전 세계 구글 지사 소속 직원 수만 명은 직장 내 성추행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사내 성폭행과 성추행 관련 대안을 내놓았다. 구글은 사내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해 사측의 중재를 폐지했다. 사내 신고 접수된 성희롱과 성폭행에 대해 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사건 발생 현황과 징계 조치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전했다.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구글 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 ‘구글 파업(GoogleWalkout)’ 트위터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구글 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 ‘구글 파업(GoogleWalkout)’ 트위터
◇ 우버 자율주행차 첫 보행자 사망사고 발생

우버 등 실리콘밸리 내 모빌리티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이면에는,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실제로 자율주행차에 치여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우버는 2018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도시 템페에서 자율주행차 시험 도중 보행자를 쳐 사망에 이르는 사고를 냈다.

당시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예비 보고서를 통해 자율주행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보행자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분류하면서 제동을 걸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NTSB에 따르면 자율주행 센서는 충돌 6초 전에서야 보행자를 인지했다.

다만 당시 우버의 자율주행차에 타고 있던 직원도 전방 주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직원은 주행 시 자체 구동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후 우버는 운전 테스트를 전면 중단하고 사고 예방 조치를 강화했다. 기존에는 운전석에 1명만 앉아있어도 됐지만, 이후에는 반드시 두 명이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우버의 자율주행 자동차 사망사고는 막연하게나마 이용자들이 가졌던 자율주행차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는 사건으로 자리잡았다.

◇ 첨단 산업과 권력의 유착, 소프트뱅크와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이면에는 권력과의 유착이 놓여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리콘밸리는 소프트뱅크의 IT 투자 펀드인 비전 펀드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전체 자금의 절반에 달하는 450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PIF는 우버와 테슬라 등에도 수십억 달러를 내놓는 행보를 보였다.

실리콘밸리에 막대한 지원을 뒷받침하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자금이 권력 암투의 결과로 나온 ‘피 묻은 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11월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의 피살 사건의 배후에 사우디 왕실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의혹에서다. PIF의 투자 결정은 전적으로 빈살만 왕세자가 내린다고 알려졌다.

카슈크지 사건은 실리콘밸리가 기술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투자금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사건으로 꼽힌다. 소프트뱅크의 막대한 투자 덕분에 실리콘밸리에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지만, 자금 이면에는 사우디 정부의 ‘비리'와도 연결돼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테크크런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더러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암살 사건 이후 소프트뱅크의 자금을 거절한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다만 손정의 회장도 "(카슈크지 사건은) 매우 비참한 사건"이라며 "빈살만 왕세자와 사우디 고위 관계자를 만나 카슈크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며 비전뱅크와 피살 사건 간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 페이스북 갈무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 페이스북 갈무리
◇ 8700만명 개인정보 유출과 가짜뉴스, 탈페이스북 가속화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 논란으로 역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만 세 건이 연이어 터지면서다.

가장 큰 유출 사고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사건이다. 3월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옵저버는 페이스북 사용자 8700만명의 개인정보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무단으로 활용됐다고 폭로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을 도운 데이터 분석 업체인 CA가 8000만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용했다. 이들 개인정보가 정치 캠페인에 이용됐다는 것.

12월 14일에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공유하지도 않은 사진이 외부로 유출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해 에어비앤비와 넷플릭스 등 페이스북과 친한 기업에 제공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 파문으로 미국 검찰의 기소와 영국 정부의 과징금 부과, 국제 사회의 데이터 유출 공동 규제 움직임 등으로 뭇매를 맞았다. 페이스북이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용자 이탈 현상을 가속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사용 시간과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지표도 있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은 9월 보고서에서 2017년부터 페이스북 앱 이용 시간이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66억분에 달했던 페이스북 앱 이용 시간은 2018년 1월 52억분으로, 7월에는 40억분으로 50% 가까이 급감했다.

◇ 뒷말 무성한 아마존 제2본사 건설

아마존의 제2본사 설립을 둘러싸고도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존은 제2본사 설립을 통해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해당 지역 내에서는 반대 여론도 거세다.

아마존은 11월 제2 본사를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와 버지니아 북부 알링턴 인근의 내셔널 랜딩(National Landing)으로 선정했다. 아마존은 두 지역에 각각 25억달러씩 총 50억달러(5조7000억원)를 투자하고 각각 2만5000개씩 총 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제2본사 건설을 통해 뉴욕 롱아일랜드와 버지니아주, 테니시주 등 지역정부로부터 최대 22억달러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받게 될 예정이다. 롱아일랜드에서는 15억달러, 알링턴에서 5억7300만달러, 내슈빌에서 1억200만달러 정도다.

그러나 아마존이 제2본사 건설로 지역 경제 활성화는커녕 세금 혜택만 챙겨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만 오르면서, 기존 거주자들만 떠나게 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또한 아마존이 부지 선정 절차를 진행하며 광고효과를 누린 것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지역 핵심 인프라 정보를 모두 수집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찰스 오켈리 미국 시애틀대 법학사회연구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번째 본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아마존은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게 됐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