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유니콘 스타트업이 잇따라 해외 자본 시장 러브콜을 받는다. 유니콘 반열에 오르려면 기업 가치 제고와 거액의 투자 유치가 필수적이다. 한국 자본시장에 한계가 있어 해외 자본에 의지한다. 다만 예비 유니콘이 대부분 일반 소비자 상대(B2C)기업이다보니 거액의 해외 자본, 특히일본과 중국 자본 유치에 대한 정서적 반감도 상당하다. 유니콘 기업 성장에 걸맞게 국내 벤처 자본 시장의 글로벌화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 예비 유니콘, 잇단 해외 자본 유치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여행·숙박 앱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은 영국계 사모펀드 CVC캐피털과 경영권를 포함한 지분 매각을 협의 중이다. CVC캐피털은 위드이노베이션 최대주주 심명섭 전 대표의 지분 45%를 비롯해 2대 주주 JKL파트너스(18%)와 한국투자파트너스, 미래에셋벤처투자, 대경창업투자, 보광창업투자 등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는 CVC캐피털 투자 규모를 1000억원대로 추정한다.

위드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CVC캐피털과 다각도로 협의 중이다"라며 "투자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는 대주주의 사법 처리 위기 해소가 투자 협상을 빠르게 재개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심 전 대표는 2018년 11월 자신이 소유한 웹하드 사이트가 음란물을 유통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가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여기어때가 지난 6월 CVC캐피털과 투자유치를 진행했다가 무산된 것은 심 전 대표가 받은 경찰조사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해가 풀린 만큼 해외 투자 유치를 통해 빨리 유니콘 반열에 오르겠다는 게 여기어때의 계산이다. 경쟁사인 야놀자는 6월 싱가포르 투자청과 부킹홀딩스(Booking Holdings) 등으로부터 2128억원 규모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해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섰다.


./ 마켓컬리 홈페이지 갈무리
./ 마켓컬리 홈페이지 갈무리
예비 유니콘 마켓컬리 행보에도 업계가 주목한다. 앞서 국내 여러 대기업이 마켓컬리 인수나 M&A 등을 검토했다. 결국 마켓컬리는 김슬아 대표가 경영권을 보유한 상태로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켓컬리는 5월 중국계 사모펀드인 힐하우스캐피탈로부터 350억원 규모 투자금을 추가 유치해 총 1350억원으로 시리즈D투자를 마쳤다.

마켓컬리가 해외 자본 유치에 나선 것은 신세계에 이어 롯데까지 뛰어들어 새벽배송 시장 경쟁이 치열해 졌기 때문이다. 실제 마켓컬리 영업손실은 점점 늘어나는 모양새다. 2018년 기준 매출은 1571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상승했지만,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3배 규모인 337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TV광고와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손실 규모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마켓컬리 투자자 중 국내 투자자들이 발을 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한 마켓컬리 주식을 중국계 주주인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와 힐하우스캐피탈 등 중국계 사모펀드에 넘기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투자 유치를 계기로 구주 매각이 진행되는 경우도 일반적으로 많고, 장외에서 거래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투자자 간 모든 거래 진행상황을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여기어때 제공
./ 여기어때 제공
◇ 국내 자본만으로 ‘더 큰 성장 어려워’

유니콘과 예비 유니콘 기업들은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해외 자본 유치가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작 해외 자본 투자를 유치한 사실 언급을 부담스러워 한다. 국내 소비자가 타깃인 B2C기업인만큼 부정적 인식이 쌓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자본 유치 관련 기사에는 ‘한국 소비자로부터 돈을 벌어 외국 자본에 넘기냐’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린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에게는 해외 자본에 국내 회사가 넘어간다고 보일 수 있다보니 관련 기사에 계속 악플이 달린다"라고 말했다.

대체재가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자칫 소비자가 경쟁사로 대거 빠져나가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최근 일본과 외교 관계가 악화되자 일본 자본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특히 더욱 예민한 모습이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영세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다른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 규모를 키우려면 수천억원 대 투자 유치가 불가피한데 국내에는 그 정도 규모 투자를 해줄 벤처캐피탈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미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기업은 해외 투자 자본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타트업 전문 리서치기업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국내 9개 유니콘 기업이 유치한 투자 총액 6조1532억원이다. 이 중 미국과 중국, 일본 3개국 투자액이 5조4398억원으로 전체의 88%를 차지했다. 한국 자본이 이들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3000억원대로 전체의 5%쯤에 불과하다.

국가별로는 일본 자금(소프트뱅크 비전펀드, SBI홀딩스, SBI인베스트먼트 등)이 3조4076억원으로 전체 유니콘 투자액의 55.4%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 자금(블랙록·세콰이어·골드만삭스 등)이 1조2802억원으로 20.8%, 중국 자금(텐센트·힐하우스 등)이 7520억원으로 12.2% 등 순이었다.

유니콘 기업 중 위메프(100%), 야놀자(38%) 등만 한국 자본이 많았고 나머지는 대부분 한 자릿수 또는 10%대에 머물렀다. 쿠팡과 엘앤피코스메틱은 한국 자본이 없다. 지피클럽의 해외자본 비율은 750억원을 투자한 미국 골드만삭스가 보유한 지분 5%다.

한국 자본은 펀드와 투자 규모 모두 작다보니 유니콘을 꿈꾸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에 한계를 노출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역대 최고치라는 지난 1분기 벤처투자액 가운데 투자기업당 평균투자금액은 18.1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1분기 17.9억원보다 상승했다지만 해외 자본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작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스케일업 펀드 조성 등의 정책을 펼치지만 결실로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관련 규제 완화도 더욱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 유니콘 기업을 둘러싼 투자 시장에서 자본의 국적은 더욱 도드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