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쟁 직후 서구문명 비판에도 껌 사업 강행

롯데의 성공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투철한 기업가정신을 빼 놓을 수 없다.

신 회장이 롯데를 창업할 당시인 1948년 일본에서 ‘껌’은 서구문명 상징으로 비판의 대상이었다. 당시만해도 껌은 일본에 주둔한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전후 일본 기성세대들은 껌을 씹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일본에서 창업해 현지에서 활동하던 기업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1965년 이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자세다./자료 롯데그룹
일본에서 창업해 현지에서 활동하던 기업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1965년 이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자세다./자료 롯데그룹
하지만 신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린이들이 껌을 좋아했고 이는 분명 하나의 식품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 것.

신 회장은 사업에 뛰어든 후 온갖 비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을 넓히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풍선껌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하는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은 것. 풍선껌을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며 놀 수 있도록 했다. 전쟁 직후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일본 어린이들에게 롯데 풍선껌은 큰 인기를 끌며,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신 회장의 껌이라는 상품을 식품보다는 입을 즐겁게 하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

껌의 특성을 살려 이벤트를 기획한 것도 신 회장의 파격적인 혁신 결과물이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엔(현재 기준 약 1억500만원)을 준다는 광고를 낸 것. 이 기발한 마케팅 기법으로 당시 일본의 껌 파는 상점 앞에는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을 연출했다.

롯데그룹측은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밀어 붙인 사람은 신격호 명예회장 본인"이라며 "신 명예회장의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만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신 부회장이 별세한 19일 발표한 논평에서 "신격호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선구자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을 통해 롯데를 국내 최고의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키셨다"며 "경제계는 고인이 평생 강조하신 ‘기업보국’과 ‘도전의 DNA’ 정신을 이어받아 기업가 정신을 높이고 우리 경제와 국가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19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