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가 통신사업자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전에 돌입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측에 이용자 증가에 따른 트래픽 폭증 상황에 발생한 영향으로 망 이용대가를 분담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넷플릭스는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는 미국 통신사에 별도의 망이용대가를 내는데, 한국에서는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 통신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의 소송 제기 행위가 단기간의 이익을 고려한 무리한 행보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에 반발한 통신사업자가 한국 진출이 임박한 디즈니플러스·HBO 맥스 등 OTT 서비스 기업과 짧은 기간 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경우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단번에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에 이어 KT까지 반넷플릭스 기조에 동참할 경우 파급력이 더 커진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로고 / 각 사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로고 / 각 사
23일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인 넷플릭스와 한국의 SK브로드밴드 간 망 이용대가 관련 소송에서 누가 승소할 지 예상은 어렵지만,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내지 않는 현 상황 자체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본다"며 "넷플릭스는 한국에 콘텐츠 공급을 위한 별도 서버가 없어 통신사업자가 국제망 증설까지 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정작 넷플릭스 자신들은 망 이용 대가를 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임승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글로벌 OTT 서비스 기업은 넷플릭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통신업체에서는 넷플릭스 경쟁 업체인 디즈니 등과 손잡고 넷플릭스의 한국 내 입지를 줄여 실력행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 진출 후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았다. 저비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던 기존 방송 제작 환경을 정상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3월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한 ‘킹덤’ 시즌2의 제작비는 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총 6부작이니 회당 30억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6부작 지상파 드라마 한편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예산은 현재도 70억~8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제작 시장 자체가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비 규모를 당장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다. 넷플릭스 수혜를 받은 곳 역시 일부 대형 콘텐츠 제작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보통의 제작사는 넷플릭스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모든 콘텐츠 제작 업체에 넷플릭스의 정책이 적용될 수 없는 만큼, 일반 콘텐츠 제작 업체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 별도의 캐시서버(오픈커넥트, OCA)를 설치해 통신비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캐시서버는 해외 서버에 있는 콘텐츠 일부를 담는 임시 서버로, 통신 사업자의 국제회선 이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콘텐츠 시청을 원할 때 한국에 있는 캐시서버에서 바로 영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서버에서 파일을 불러올 경우 국제 회선 이용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 넷플릭스는 OCA를 통신사업자와 자신들이 윈윈하는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같은 OCA 전략을 채용한 미국 등 국가에서는 별도의 망 이용대가를 낸다. 한국에서만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반 한국 기업은 통신망 사용 대기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간 역차별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잇달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소송 대상은 당장 SK브로드밴드이지만, OCA에 동참하지 않은 KT까지 소송을 주시하는 것으로 안다"며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디즈니플러스는 SK텔레콤과 긴밀한 관계로 아는데,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소송이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진출 속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