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자체 개발 프로세서인 애플 실리콘 ‘M1’을 정식으로 공개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디바이스뿐 아니라 PC 제품군에서도 자체 프로세서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인 칩이다.

애플은 M1 칩을 탑재한 맥북 에어와 맥 미니는 물론, 본격적인 전문가용 랩톱(노트북)인 맥북 프로 신제품도 함께 선보였다. 이는 애플 실리콘을 자사 맥(Mac) 라인업에 단계적으로 적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애플 스스로도 M1 프로세서의 성능에 만족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애플 실리콘 M1 이미지 / 애플
애플 실리콘 M1 이미지 / 애플
애플 실리콘 M1과 이를 탑재한 차세대 맥 시리즈를 살펴보면 제품군에 대한 애플의 미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앞으로 등장하는 맥 제품군은 기존의 맥과 어떻게 달라질까.

더욱 높아진 자기 완결성과 그로 인한 맥 라인업의 단순화

애플 실리콘 M1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 프로세서가 아닌, 다양한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의 칩에 한 데 묶은 시스템 온 칩(SoC) 방식의 프로세서란 점이다. CPU와 GPU는 물론, 뉴럴 엔진, 보안 칩, 각종 입출력 컨트롤러 등은 물론, 메모리까지 하나의 칩에 모두 집어넣었다. 스토리지(SSD같은 2차 저장장치)를 제외한 PC의 거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의 칩에 집약함으로써 자기 완결성이 높아졌다. 마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제품용 프로세서와 비슷하다.

SoC의 장점은 ▲각각의 핵심 부품을 하나로 통합해 기판의 부피와 크기를 더욱 줄일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제품의 크기를 더욱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부품간 데이터 이동 효율과 전력 효율을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성능은 더욱 높이고 배터리/전력 효율은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M1 칩의 등장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애플 실리콘 M1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 다이어그램 / 애플
애플 실리콘 M1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 다이어그램 / 애플
애플은 이번 신형 맥 3종을 발표하면서 각 제품에 탑재한 M1 칩 자체는 딱히 성능이나 기능에서 구분을 두지 않았다. 즉, 신형 맥북 에어와 맥 미니, 맥북 프로에 탑재된 M1 칩 자체는 모두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작동 속도와 전력 설계에만 차이를 둠으로써 각 제품을 구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3개 제품 중 가장 성능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맥북 에어는 저전력·저발열 설계로 아예 냉각 팬이 없는 무소음 디자인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보다 성능이 좋은 것으로 보이는 맥 미니, 맥북 프로 신제품은 각각 별도의 방열판과 냉각팬 등으로 구성된 액티브 냉각 솔루션을 적용했다.

또한, M1 칩의 등장은 아이맥 이하 맥 시리즈의 제품 라인업을 더욱 단순화할 전망이다. 이전까지의 맥북 시리즈와 맥 미니는 같은 세대 제품이어도 CPU의 종류에 따라 성능 차이가 분명했고, 구매자가 자신의 용도에 맞춰 성능과 사양을 선택할 수 있었다.

반면, M1 이후 나올 맥북 에어, 맥 미니, 맥북 프로 제품군은 메모리 용량과 스토리지 용량만 차이가 있을 뿐, 성능에 따른 세부적인 구분이 없이 각각 단일 모델로만 나오게 될 전망이다.

즉, 소비자는 더는 CPU 종류에 따른 성능 차이를 고민할 필요 없이 자신의 용도와 목적에 맞는 제품만 고르고, 사용 환경에 따라 메모리 용량 및 스토리지 용량만 선택하면 되는 셈이다. 이 역시 하드웨어 구성 자체는 고정되어 있고 저장용량만 차이가 있는 아이폰 및 아이패드의 구성과 같다.

더욱 벽이 높아지고 배타적으로 변하는 맥 생태계

애플 특유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생태계 울타리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인텔 CPU를 사용하던 이전까지의 맥 제품군은 CPU와 메모리, 각종 컨트롤러 등이 각각 분리되어 있어 어느 정도 사용자가 사양을 변경하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었다. 메모리와 스토리지가 교체 가능한 구조라면 업계 표준 규격을 따르는 다른 회사의 메모리나 스토리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유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메모리까지 몽땅 통합해버린 M1 칩의 등장은 그러한 하드웨어적 유연성을 없애고, 오직 애플이 제공하는 옵션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크게 제한한다.

예를 들어 M1 칩을 채택한 새로운 맥 제품을 구매해 사용 중, 메모리 용량을 늘리고 싶으면 M1 칩을 장착한 내부 기판 자체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 M1 칩이 기판에 고정되어 따로 교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처음 구매했을 때의 저장공간을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M1 기반 신형 맥북 프로의 경우, 메모리를 8기가바이트(GB)에서 16GB로 늘리는 데만 무려 200달러(22만2000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M1 칩과 따로 분리되어 선택의 폭이 넓고, 추후 업그레이드도 훨씬 수월해 보이는 SSD 역시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에서 만드는 범용 제품이 아닌, 애플이 자체 개발한 전용 제품만 지원할 전망이다.

이미 애플은 맥 프로의 내장 스토리지에 자체 보안 칩을 추가한 전용 SSD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타사의 일반 SSD 사용에 제약을 걸어둔 바 있다. 즉, M1 칩에는 맥을 비롯한 애플 제품 사용자들을 오로지 자신들의 하드웨어 생태계 내에서만 묶어두겠다는 애플의 미래 전략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왼쪽부터)애플 실리콘 M1 기반 신형 맥북 에어, 맥북 프로, 맥 미니 제품 / 애플
(왼쪽부터)애플 실리콘 M1 기반 신형 맥북 에어, 맥북 프로, 맥 미니 제품 / 애플
그뿐만이 아니다. 부트캠프를 통해 맥 제품에 윈도를 비롯한 다른 운영체제(OS)를 설치하거나, 일반 x86 시스템에 편법으로 맥 OS를 설치해 자신만의 맥 시스템을 구성해 사용하는 ‘해킨토시’를 사용하는 것도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전자의 경우는 애플 실리콘 차제가 x86이 아닌 ARM 기반 CPU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윈도의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ARM용 윈도 10을 별도로 선보이긴 했지만, 애플이 설치를 허용할 리가 없다. 또 ARM용 윈도에서는 기존 x86 윈도용 앱을 쓸 수 없는 만큼, 기존 윈도 사용자 입장에서도 딱히 매력이 없다.

후자의 경우도 애플 실리콘 M1과 함께 선보이는 차세대 맥OS ‘빅 서(Big Sur)’가 인텔이나 AMD의 x86 프로세서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편법을 써도 일반 PC에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해킨토시’를 사용하려면 ‘카탈리나’ 이하의 구형 맥OS만 사용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최신 맥용 앱을 쓸 수 없게 되어 맥OS를 쓰는 장점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습에서도 애플이 맥 생태계에 타사의 진출과 참여를 철저히 억제하고, 오직 자신들만 통제하고 독점할 수 있는 생태계로 재편 중인 것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애플은 애플 실리콘 M1을 통해 기존 PC 생태계에서 완전히 독립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겠다는 오랜 염원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런만큼 M1 이전과 이후의 애플의 전략과 행보도 완전히 달라질 전망이다. 새로운 생태계에서 그들만의 혁신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외부 수혈 없이 철저히 갈라파고스화되어 스스로 혁신의 문을 닫을 것인지는 애플 자신에게 달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