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패소로 배터리 분사 시계 제로

이광영 기자
입력 2021.02.17 06:00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분사 계획이 ‘시계제로(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상태에 빠졌다. 10일(현지시각) 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에 패소 판결을 내린 결과물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에 지불할 합의금 규모에 따라 재무 및 신용등급 변동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다. 합의가 지연될 경우에도 향후 배터리 수주전에서 경쟁력 약화 가능성이 있어 배터리 사업 분사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SK이노베이션
앞서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성장성 높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할해 외부 투자를 유치할 경우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 대표는 2020년 10월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에 참석해 "배터리 사업 분사를 재무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 대표는 구체적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 SK이노베이션이 분할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은 1월 31일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및 컨퍼런스콜에서도 "회사 구조 변화 등 전략적 접근을 검토하고 있으며, 배터리 업황 변화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분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의 2020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부문 매출은 1조6102억원, 영업적자는 4265억원이다. 아직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지 못했다. 회사는 배터리 사업 BEP 달성 시기에 맞춰 사업 분할을 준비할 계획이다. BEP 달성은 연간 60기가와트시(GWh) 규모 생산을 본격화하는 2022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최근 ITC의 패소 판결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분사는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금을 도출하기까지 진통이 예상되고,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업·재무적 불확실성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연방비밀보호법(DTSA)을 토대로 ITC 판결 이전에도 3조원쯤의 합의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승소를 기점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액까지 포함해 최소 5조원 이상의 합의금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수천억원대 합의금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거액의 합의금 지불 등 패소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으로 배터리 사업 분사 계획을 늦출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부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업부를 독립하더라도 시장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합의금 규모를 줄이기 위해 연내 상장 예정인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일부를 LG에너지솔루션에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빠른 분사를 통한 추가 투자 유치로 사업 자금을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합의금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분사에 나서거나,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소송 합의금 지불이 배터리 분사 시점에 간접적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재무적 관점에서 이를 따지는 것은 시기상조다"라며 "자금 확보를 위해 분사를 서두르는 것도 근시안적인 방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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