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을 놓고 신규 진입하는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업계 간 갈등이 심화된다. 중고차 진영은 2020년 하반기부터 수차례 시위 등을 통해 ‘결사항전'을 외치며 절박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시장 획정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사태가 더욱 악화된다. 업계의 혼란 지속에도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는 셈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 매매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 매매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19일 중고차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사업을 지칭하는 자동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2년째 표류 중이다. 생계형적합업종법(소상공인상계형적합업종지정에관한특별법)에 따르면 생계형 적합업종은 신청일부터 심의·의결하는 날까지 최장 15개월 이내에 지정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동차 판매업의 경우 2019년 2월 신청일 이후 2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5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제한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등 중소기업 적합업종보다 소상공인 보호가 한층 강화된 제도다. 지정 여부는 동반성장위원회 심의를 준용, 중소벤처기업이 결정한다.

자동차 매매업은 2013~2019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지만, 2019년 2월 28일 지정기간이 만료됐다. 중고차 업계는 곧바로 동반성장위원회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11월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중소벤처기업부로 공이 넘어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업무 과중 등 이유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사실상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문제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 간 ‘중고차 상생협력위원회' 설립을 공식화하며 발족식을 연다. 중고차 판매업을 대표하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발족식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완성차 제조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상생협력위원회 설립 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을 촉구했다. 중고차 품질 향상, 시장 확대 등을 위해 대기업 진출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KAMA 주장이다.

정만기 KAMA 회장은 "중고차매매 단체들의 불참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 발족이 무산된 것은 상생협력 방안 시행으로 완성차 업체들과 기존 중고차 매매상인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혜택을 생각한다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라며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한 법정 심의 기한이 이미 9개월 이상 지난 점을 감안해 정부는 조속히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결론을 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고차 업체들은 상생협력위원회가 완성차 업체들을 위해 미리 짜여진 판이라고 지적한다. 위원회 설립 의도나 준비 과정 등에 의혹이 많아 참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국 18개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상생협력위원회 발족식 전날인 16일 가진 전체 회의에선 ‘상생협약 절대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불과 발족식 며칠 전에 행사가 열리니 참석해달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준비가 철저히 되어있는 곳에 중고차 업체들을 불러들여 여론몰이 하려는 자리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현재 정부와 완성차 진영이 주장하는 ‘상생'은 중고차 판매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들의 존속을 흔들 정도로 일방적인 구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측이 상생을 이야기하지만 중고차 업계를 위해 양보하거나 제안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완성차 업체들이 상태가 좋은 매물을 독식, 중고차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을 야기하고 기존 업체들이 고사할 위험이 있다고 중고차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완성차 업체들이 다루겠다는 중고차는 신차 보증기간이 끝나기 전 매물들이고, 중고차 시장 성장이 더딘 이유는 유통부문 문제 이상으로 완성차 품질이 낮아 회전율이 낮다는 점을 교묘히 감추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상생'엔 중고차 업체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것이 협회 측 입장이다"라고 강조했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