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해 빅테크와 금융사 상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만든 ‘디지털금융협의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해 관련 회의를 영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은 물론 급작스러운 회의 연기 등으로 인해 금융사와 빅테크 간 갈등이 오히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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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기업들이 빅테크·핀테크 기업과 곳곳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일례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추진에 따른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 도입을 두고는 규제 형평성을 놓고 다툰다. 금융권은 핀테크가 동일한 금융서비스를 하는 만큼 기존 금융권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핀테크 업계는 은행 고유 업무인 예금·대출 업무를 하지 않다며 동일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고 맞선다.

이같은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2020년 9월, 디지털금융협의회를 출범시켜 지금까지 총 7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이 주재한다. 김동성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한동환 KB금융지주 부사장 등 금융당국과 금융권 관계자, 김지식 네이버파이낸셜 이사, 신원근 카카오페이 부사장 등 핀테크 관계자, 정준혁 서울대교수, 최재영 금융산업노조 대외협력 본부장 등이 참석한다.

디지털금융협의회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금융노조 관계자까지 포함해 협의회가 구성되자, 금융권은 큰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면서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협의회에 참석한 관계자는 "서로 입장을 발표하고 입장차를 확인하면 난상토론이 진행되기를 기대했는데 핀테크와 금융권 입장발표를 듣고 끝나는 식의 토론이 진행됐다"며 "건의사항을 전해도 그것이 즉시 반영되지 않고 두 달 뒤 진행하는 토론에서도 해당 사안이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정기적인 회의 일정과 비공개되는 회의 자료 등도 문제로 꼽힌다. 디지털금융 협의회는 지금까지 두 달 간격으로 진행됐지만, 정확하게 언제 개최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회의 일정이 닥치면 통보되는 방식이다. 특히 각 회의마다 주제가 한정된다. 당연히 여러 사안을 다루기 어려운 구조다. 무엇보다 회의 자료는 최근에서야 사전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회의 자료가 공유되지 않았다.

협의회에 참석한 또 다른 관계자는 "보안 문제 때문인지 협의회 초반에는 회의 자료를 사전에 공유하지 않았다"며 "화상회의를 통해 처음 발표를 듣게 되는데 연결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전에 내용을 미리 알고 있어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만큼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해 최근에서야 자료를 사전에 배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하는 광범위한 협의회를 만든 만큼,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만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 관계자까지 포함해 금융권 인사를 이렇게 많이 모은 협의회를 만든 것 자체는 아주 신선하다"며 "본래의 설립 취지를 살려 난상 토론 형식으로 지금까지 나온 금융권과 빅테크 간 갈등 사항을 조율해도 협의회 설립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