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연착륙에 실패했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줄도산과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고, 매달 1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1997년 초 시그널이 있었다. 동남아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견고해 전혀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지만, 착실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피해를 최소화 할 시간이 있었지만 아무런 처방전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OECD 가입 1년 2개월 만에 IMF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IMF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지구 온난화 문제에 직면한 세계는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탄소중립’에 나섰다. 도쿄의정서에 이어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한 세계 각국은 앞다퉈 관련 정책을 마련했고, 기업 역시 화석 연료가 아닌 그린 에너지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심한다.

전 세계가 탈탄소 흐름에 동참했다. 한국이 선제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IMF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한국의 핵심 사업인 철강과 자동차, 화학 등 고탄소 관련 산업계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 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돕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페이지2북스)은 탈탄소 시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린 에너지와 미래 산업에 대해 쉽게 풀어낸 책이다. 책의 저자인 조원경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은 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기획재정부에서 통상조정과장과 대외경제총괄과장,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낸 국제 경제 전문가다.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에는 30년이 넘는 조 부시장의 공직 생활 기간 경험과 울산 경제부시장으로 취임한 후 체험한 울산 경제의 변화상이 고스란이 녹아 있다. IT조선은 울산시청 집무실을 직접 방문해 조원경 경제부시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현안인 수소경제에 대한 생각을 여과없이 들려줬다.

조원경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이 8월 26일 울산시청 집무실에서 수소경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이광영기자
조원경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이 8월 26일 울산시청 집무실에서 수소경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이광영기자
수소경제란 수소를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 국민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 경제 성장과 친환경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경제 시스템이다. 조원경 부시장은 책에 담긴 내용은 물론, 지면 관계상 담지 못했던 뒷얘기까지 신에너지 수소가 가져올 거시경제 전망에 대해 속시원히 소개했다.

조원경 부시장은 "환경 경제학 측면에서 우리는 지구라는 공공재를 돈을 내지 않고 무임승차(프리라이드) 하고 있다"며 "만약 기후가 은행이었다면 우리는 구제금융을 여러번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 규제가 더해질수록 재생에너지 생산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수소경제를 위해 각국 정부는 수소 양산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도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기획재정부에서 지자체(울산시)로 자리를 옮겼는데 소회는.

"평소 (생각하는 방식이) 공무원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기재부에서도 글을 신선하게 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국제기구나 자금 흐름과 같은 거시경제 업무를 주로 해왔는데, 기업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주는 등 산업을 직접 육성하는 실물 경제 분야에서도 좋은 경험을 얻고 있다."

-수소경제에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나.

"일자무식(一字無識)이었다. 몇년 전 제러미 리프킨의 책 ‘수소혁명(수소경제가 시장·정치·사회제도를 본질적으로 바꾼다)’을 접한 것이 처음이고, 울산에 와서 수소경제의 의미를 크게 깨달았다. 때마침 유럽에서 수소로드맵이 나왔고,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수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는 과정에서 수소경제가 우리나라의 가야할 길이라고 느꼈다."

-그린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였나.

"인천 송도에서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업무를 담당했었다. 정부개발원조(ODA) 차원에서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중남미에 지원한 적도 있다. 막연하게 우리나라도 안 하는데 중남미가 오히려 먼저한다고 생각했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얘기는 기재부에서 관심없는 주제였다. 하지만 울산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제조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 도구라고 생각한다."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했다. 우리도 가능한 얘기인가?

"우리가 개발도상국 지위에 있을 때와 다르게 이제는 일정 규모 기업은 불가피하게 탄소제로 흐름으로 가야한다. 탄소국경세가 당장 도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기업은 어느정도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한번도 만든적 없는 그린수소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그레이·블루수소는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지 등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 앞으로 10년이 한국에 중요한 시기다."

조원경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이 수소경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현대차의 수소차인 ‘넥쏘’ 모형이 놓여 있다. / 이광영 기자
조원경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이 수소경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현대차의 수소차인 ‘넥쏘’ 모형이 놓여 있다. / 이광영 기자
-수소에 색깔이 없는데 그린·블루·그레이는 어떻게 구분되나.

"수소 생성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브라운 수소’와 ‘그레이 수소’는 각각 화석연료인 석탄과 천연가스로 만드는 수소다. 천연가스와 이산화탄소 포집설비를 이용하는 하이브리드형 수소를 ‘블루 수소’라고 한다. 오직 재생에너지만 이용해 만드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제로(0)인 수소가 ‘그린 수소’다."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도 RE100 성공의 관건일 것 같다.

"유럽과 미국은 탄소배출권 가격이 우상향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여파로 거래와 가격 등락이 불규칙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가격 등락은 일시적인 것일 뿐, 결국에는 유럽처럼 가격이 오르고 시장도 활성화 될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 접목도 가능하지 않을까.

"탈탄소와 에너지 지능화, 분산화 측면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미래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상전력소가 나오고,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가정마다 생산하는 태양광 에너지를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세상도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수소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원이 다양하다. 생산 단가 측면에서 고민이 큰데.

"그린수소는 ㎏당 8000원쯤 한다. 울산은 수소 인프라 확대로 수소 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 수소배관망 확충,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유치로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수소를 많이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유식 풍력을 통해 20%쯤의 수소를 생산할 방침이다.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인 호주 선메탈이 태양광, 풍력발전으로 만든 그린수소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술 발전도 관건이다."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책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넘어 TGIF(기술·정책·국제 아젠다·재정)의 시대를 강조했는데.

"기존의 ESG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관념적으로 얘기한 것이었는데, 최근 환경이 강조되면서 ESG의 개념 자체가 확장하는 상황이다.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앞으로는 ESG가 아니라 TGIF 이슈가 더 커질 것이다. TGIF 흐름에 따라 기술 발전을 시키지 않은 기업은 탄소규제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국제 아젠다인 파리 협약에 따라 탄소중립이 필수 원칙이 된 만큼, 화석연료는 앞으로 재정적 측면에서의 부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린버블(친환경 기업가치 거품)·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친환경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풍력발전 기업의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린버블이나 워싱에 의해 오른 주가는 결국 붕괴되기 마련이다. 해상 풍력과 조선 등 진정한 그린 투자 가능성을 잠재한 기업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미래차 시장에서 수소차와 전기차는 공존 가능할까?

"내연기관차 퇴출 영향으로 당분간 하이브리드차(PHEV)가 대세가 될 것이다. 이후 전기차와 수소차를 찾는 수요가 뒤를 이을 것으로 본다. 수소차와 전기차 간 공존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수소차 충전소 구축 비용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수소차 뿐 아니라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수소선박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