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위해 민간과 학계가 머리를 맞댔다. IPTV 셋톱박스가 수집한 고객 이용 패턴 등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여 시청 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낡은 규제로 다양한 사업자를 규제하지 말고, 공공·민간 미디어 영역을 구분해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왼쪽부터 김훈배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과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CO장, 최창국 LG유플러스 홈/미디어사업그룹장, 정준희 한양대 교수, 박민수 성균관대 교수, 지성욱 한국외대 교수,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종합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왼쪽부터 김훈배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과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CO장, 최창국 LG유플러스 홈/미디어사업그룹장, 정준희 한양대 교수, 박민수 성균관대 교수, 지성욱 한국외대 교수,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종합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IPTV 셋톱박스 데이터 활용하면 시청 연구에 매출 연결까지 가능"

한국IPTV방송협회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호텔에서 ‘제3회 지속 가능한 미디어 생태계 콘퍼런스 2021’을 개최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급변하는 국내 미디어 업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박현수 단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이날 발제에서 IPTV 셋톱박스 전수 데이터를 이용한 TV 시청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박 교수는 SK브로드밴드와 KT, LG유플러스를 포함한 IPTV 3사의 셋톱박스 데이터를 활용해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표본조사 방식으로 진행되던 TV 시청률과 같은 수준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청률 0.5% 규모 이하에선 표본조사 대비 전수조사 방식의 신뢰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시청 지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시청률 지표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표본조사 대비) 전수조사 강점은 중소 PP가 억울한 부분을 해소하는 데이터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를 근거로 IPTV 3사의 통합 시청률 데이터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IPTV 3사가 데이터 이름을 통합하고, 시청 가구를 정의하는 등 표준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같은 작업이 더해지면 IPTV 사업자가 데이터 매니지먼트 플랫폼(DMP)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셋톱박스에 있는 엄청난 데이터는 모든 분야에 사용될 수 있다. 광고 노출이나 시청 연구, 나아가 매출까지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IPTV 3사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데이터가 생산된다면 혁명적인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IPTV 사업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창국 LG유플러스 홈/미디어사업그룹장은 토론 패널로 참여해 "IPTV라는 매체가 광고 산업에서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하다. 모바일, 포털 중심의 광고 매체가 산업을 주도하는 중에 IPTV 사업자가 이 틀을 깨보려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이 측면에서 IPTV 사업자가 셋톱이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현수 단국대 교수가 IPTV 셋톱박스 전수 데이터를 이용한 TV 시청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박현수 단국대 교수가 IPTV 셋톱박스 전수 데이터를 이용한 TV 시청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공공·민간 영역 구분해야"…유료방송 수신료 현실화 논의도

또 다른 발제자인 홍종윤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국내 미디어 산업 구성원이 각자도생하는 상황에서 사업자 간 갈등이 심화한다고 짚었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플랫폼 간에는 지상파 재송신료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PP와 유료방송플랫폼 간에는 PP 프로그램 사용료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것이 주요 사례다.

홍 교수는 미디어 산업이 발달할수록 사업자 간 연계 효과로 갈등이 복잡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고 짚었다. 2000년대 마련된 낡은 방송법 체제에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더했다. 방송 제도와 정책 전반에서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접근으로 향후 정책 과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홍 교수 설명이다.

홍 교수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오징어 게임 중이다"며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되지 말고 룰 체인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을 구분해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영방송과 같은 공공 미디어 영역과 유료방송 등의 민간 미디어 영역을 나눠 적재적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민간 영역에선 소유와 편성, 운영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더했다.

유료방송 시장의 재원을 높이기 위한 저가 수신료 현실화도 과제다. 홍 교수는 채널 가치와 프로그램 사용료를 연동해 프로그램 재투자를 유인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근 넷플릭스의 망 이용대가 지급 거부 논란으로 떠오른 국내외 사업자 간 공정경쟁 구도 확립도 필요한 상황이다.

SK브로드밴드는 토론 세션을 통해 유료방송 시장에서 저가 수신료를 높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익을 내는 파이를 키우고자 수출 중심의 사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더했다.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CO장은 "유료방송 요금 현실화는 늦었다. 2000년대부터 누적된 단층을 깨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며 "수입 경쟁에서 수출 경쟁으로 가 더 큰 시장에서 경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