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분야에 적극 진출을 선언,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단순 투자나 일부 경영 참여에 그치지 않고 관련 사업을 핵심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켜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와 CJ 등 다수의 대기업 계열사를 포함, 게임과 테크,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국내 상장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분야를 사업 목적에 추가하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겠다고 공시했다.

블록체인 관련 기술과 기반 서비스 개발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세간의 부정적 인식으로 오랫동안 금기시 됐던 가상자산 중개·매매업도 다수 등장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급성장하고 제도권 안착과 정부 지원이 기대되면서 산업 육성 토대가 마련된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대기업·엔터사·게임사·기술 기업 등 정관변경 러시

대기업 중에서는 LG전자의 정관 변경이 눈에 띈다. LG전자는 공시를 통해 사업 목적에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의 개발·판매’, ‘암호화 자산의 매매·중개업’ 등을 추가했다. 실제 LG전자는 발광 다이오드(LED) 사이니지에 대체불가능토큰(NFT) 디지털아트 플랫폼을 탑재하고, 내부 전문가 교육과정 인증서를 NFT로 수여, 블록체인을 적극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분산원장 플랫폼인 ‘헤데라 해시그래프’의 운영위원회에 참여, 블록체인 생태계에 꾸준한 관심을 드러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가상자산, 블록체인 사업 확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해 7월 두나무와 손잡고 NFT 시장에 진출한 JYP엔터는 이번에 ▲가상자산 개발 ▲가상자산 거래소 투자자문 ▲블록체인 투자·관련 서비스업 ▲가상자산 유통 관련 에코시스템 구축 사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CJ ENM은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가상자산(NFT 포함) 관련 매매·중개업’을 포함했다. CJ ENM은 드라마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과 NFT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마찬가지로 NFT 서비스를 준비하는 초록뱀미디어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 자산의 개발·매매·중개업’과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타 서비스업’에 진출한다.

게임 업계에선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이 블록체인 관련 사업과 연구개발업을, 컴투스가 ‘블록체인 기반 유선 온라인·모바일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 ‘블록체인·메타버스 기술 관련 기타 정보 서비스업’을 공시했다. 네오위즈는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내용의 사업 목적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을 추진한다.

이밖에도 금호전기, 코나아이, IHQ, 셀바스AI, 줌인터넷, 글로벌텍스트리 등이 사업목적에 블록체인 또는 가상자산을 추가했다.

빗썸 주주 비덴트…"우리도 가상자산업체"

이 가운데 일찍이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해 실적 개선을 이룬 빗썸의 주요 주주 비덴트가 눈에 띈다. 비덴트는 HD 디지털 방송용 디스플레이로 세계 시장에서 소니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테크 기업. 지난 2017년 빗썸에 300억원을 투자하면서 가상자산과 인연을 맺었다. 오는 29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가상자산 환전, 중개 및 서비스업 ▲전자화폐 및 가상자산 관련 사업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가상자산 관련 솔루션 개발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 본격 사업에 뛰어든다.

비덴트는 본업으로 다진 업력과 빗섬 운영에서 터득한 P2P 네트워크 기술을 노하우 삼아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가상자산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실시간 소통 판매 플랫폼(라이브 커머스)을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비덴트는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으로 실적 개선과 기업가치 상승 효과를 동시에 누렸다. 올해 매출 177억원, 영업이익이 9억원을 기록한 와중에 순이익 2242억원을 올렸는데 빗썸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빗썸은 무려 1조10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6년 655억원이던 비덴트의 시가총액은 16일 장마감 기준 8287억원으로 약 13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 급성장 전망·우호적인 정책 환경 조성에 사업 확장 시도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빠른 성장세가 기폭제가 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총 55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일 평균 거래규모는 11조3000억원으로 코스닥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글로벌 경영전략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한국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300조원이며 오는 2026년까지 1000조원으로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시장 성장과 함께 정부의 육성 정책으로 올해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하기에 적합환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가상자산 법제화와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을 약속하는 한편 NFT와 가상자산공개(ICO) 조건부 허용 공약도 내놨다. 국내 기업들이 올해 가상자산 분야를 사업 목적으로 추가한 이유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에서 블록체인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기업들은 디지털 금융을 포함해 유저의 개인정보관리와 보안, 결제 서비스 구축, 서비스 확장의 모든 영역에서 가상자산이 가진 실물 경제 활성화 기능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며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이 정책적 분기점을 넘어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게 현장에서 확인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기존 서비스와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 확대보다 투입 비용만 늘 수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 활용과 가상자산의 기능과 사업의 목적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