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우선 군대 만드는 시작점…미래 아닌 현실 문제, 당장 시작해도 늦어
육군의 워리어플랫폼이 이슈다. 육군은 3월 12일부터 13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워리어플랫폼 전시회를, 20일에는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워리어플랫폼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회에서 굳이 3일간 전시회와 세미나를 실시한 이유가 뭘까? 필자는 이를 무언의 시위로 본다. 우리 지상군이 얼마나 열악한 장비로 싸워야 했고, 최소한 어떤 수준의 장비가 필요한 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 당장 필요한 건 아이언맨이 아닌 '전투력'
워리어플랫폼은 2017년 11월 말 언론에 관련 내용이 유출되면서 알려졌다. 당시 언론은 워리어플랫폼의 일부로 신형 전투복을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를 냈다. 하지만 워리어플랫폼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내용은 비난 혹은 무시에 가까웠다.
워리어플랫폼이란 무엇일까? 육군의 기반이 되는 일반 전투 요원인 '워리어', 즉 전사가 휴대하는 피복과 장구류, 장비를 총칭한 기반 체계다. 기반이 되는 철학은 이렇다. 육군의 핵심전투력이 전투병에서 나온다면, 이러한 전투병(특히 보병)이야말로 육군의 핵심무기체계, 즉 플랫폼이 된다는 얘기다.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의 말을 빌리자면 '용사 한 명 한명, 장병 하나 하나이 바로 전투플랫폼'이다.
하지만 미래 병사 체계는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꽤 많은 연구예산에도 여전히 실용화된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현재도 10년 전 구식 체계이거나 손목 미사일 등 실제 전장에서 실현가능성이 없는 무기체계를 제안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를 앞세워 현실과는 더 동떨어진 체계만 제시할 뿐이다. 전장의 현실을 모르는 학계와 연구계의 민낯이 부끄러운 지점이다.
2000년대까지한 해도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X밴드식 군장이 그대로 활용됐고, 신형 방탄조끼와 군장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현대적 군대의 보병장비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 육군의 보병 장비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선된 장비들도 걸프전 시기의 미군 보병 수준에 불과하다.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이 직접 설명하는 워리어플랫폼. / 대한민국 육군 유튜브 제공
◆ 5대 게임 체인저의 일환
국방 개혁의 거의 모든 개혁과제는 육군에 집중돼 있다. 인구의 자연 감소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이 에고되자 참여정부의 국방 개혁에 나섰다. 현 정부는 병력을 어쩔 수 없이 줄여야 하는 와중에 북한의 핵위협까지 현실화돼 전략적 상황이 불리해졌다.
현재 국방부는 신작전 수행 개념을 수립하면서 속전속결 형태로 군사 체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워리어플랫폼은 5대 게임체인저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전력이다. 나머지 네 가지 게임체인저의 바탕이 된다. 또 5대 게임체인저 가운데 임무형태에 따른 요구가 명확하고, 가장 빠른 시일 내 의미 있는 전력화가 가능한 것이 워리어플랫폼이다. 즉시 보급해도 당장 임무수행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워리어플랫폼이라는 얘기다.
인식도 문제다. 육군병사의 기본군장을 바꾸는 게 전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는 회의적 시각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48만명쯤의 육군 전체 보병장비 교체는 엄청난 예산을 요구한다. 신형 군장을 위해 신형 전차를 포기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개 고개를 젓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악순환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바꿔야한다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워리어플랫폼은 단순히 군복을 바꾸는 게 아니다. 보병과 관련된 장비의 일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워리어플랫폼은 크게 전투피복, 전투장구, 전투장비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전투피복은 최근 트렌드를 모두 적용했다. 기능성을 위주로 각 부위를 효율적으로 절개해 전투시 자세에서 전투복이 행동을 제약하지 않도록 했다. 무릎보호대를 내장할 수 있어 전투시 몸을 던져 무릎쏴를 하더라도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방탄조끼 착용으로 땀이 심한 상의에는 기능성 섬유가 적용된 컴뱃셔츠를 채용했다.
이외 방탄조끼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간략한 군장으로 체스트리그를 채용할 수도 있다. 방탄헬멧에는 레일을 장착해 헬멧카메라나 라이트, 피아식별(IFF) IR라이트 등을 장착할 수 있다. 쿠션과 4점식 지지대를 채용해 야시경을 장착하더라도 헬멧이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고정될 수 있다. 또 전투용 안경을 착용해 파편으로 인한 실명을 방지했다.
전투장비도 업그레이드 된다. 야간전투시 적에 대한 우위를 보장하기 위해 야시경을 개인마다 지급할 예정이다. 야시경 착용 시에도 교전할 수 있도록 IR레이저를 채용한 표적지시기를 총기와 결합시키게 된다. 또 총기에는 소음기를 장착해 소음과 섬광을 줄여 적이 아군의 사격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전투능력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탄창도 기존 금속제가 아니라 중량을 줄이고 스프링 강성을 높인 맥풀과 유사한 플라스틱 제품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육군 워리어플랫폼의 설명. 제목은 꿈의 개인전투체계라고 잘못 표기됐지만 실제로는 현실에 바탕한 개인전투체계를 가리킨다. / 대한민국 육군 유튜브 제공
◆ 이번에는 과연 가능할까?
우수한 장비가 나온다고 저절로 보급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예산에서도 우선순위에 따라 워리어플랫폼을 전력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육군의 워리어플랫폼 획득정책은 매우 전향적이라고 하겠다. 중장기 사업으로 보는 게 아니라 우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집중투자를 통해 확보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한 번에 모든 부대에 다 지급할 수는 없다. 특임여단, 기동군단, 특공·수색 등 일선급 특수임무부대와 GOP 등 적접지역을 지키는 일선부대 등 순서가 될 것이다.
특히 육군은 무적의 전사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전사기질(Warrior Spirit)을 확립함으로써 보병을 단순히 군인이 아닌 전승을 위해 단결하고 국민과 약자를 보호하는 전사로서 재정립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 즉 워리어플랫폼이 단순 장비만 바꾸면서 미군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전에 대한 통찰과 전쟁윤리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수한 전투장비는 우수한 전투력의 바탕이다. 우수한 방탄장비로 적의 탄환이 날아와도 생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당당히 뛰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비도 준비해주지 않고 용기있는 전투를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 우수한 보병장비야말로 우리 장병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다. 따라서 워리어플랫폼이야말로 국방개혁2.0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개혁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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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은 서울대 법대와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방부·방사청·합참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