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의 오덕이야기] ㊲부활 신호탄 쏴올린 열혈SF 대명사 '톱을 노려라'

입력 2018.09.15 06:0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며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불꽃 같은 열혈·우정·하드·SF·우주과학·용기·근성·노력·섹시·무적로봇·스펙파클·대하 로맨스!!!!!" 1988년 공개된 SF 로봇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トップをねらえ!)’의 홍보 문이다.

톱을 노려라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톱을 노려라!'는 에반게리온을 탄생시킨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의 감독 데뷔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인기 테니스 만화 ‘에이스를 노려라!’와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 ‘탑건’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콘텐츠를 ‘오마주’해 만든 작품이다.

1973년 공개돼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포츠 만화로 평가받는 ‘에이스를 노려라’는 땀 냄새 나는 ‘스포츠 근성(根性)’을 강조한 스토리로 구성된다. 하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을 순정만화 속 미소녀 캐릭터로 표현해 당시 소년·소녀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노리코는 학교에서 만난 코치의 특훈과 본래 가지고 있던 근성과 기술을 연마해 로봇 파일럿으로 성장한다. / 야후재팬 갈무리
안노 감독과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가 톱을 노려라에 미소녀 캐릭터를 등장시킨 까닭은 앞서 만든 SF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네오아미스의 날개’에 대한 팬 평가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리코의 파트너로 활약하는 아마노 카즈미. / 야후재팬 갈무리
안노 감독은 총 8억엔(81억원)의 제작·선전비를 들여 왕립우주군 작품을 만들었지만, 투자금의 절반에 못 미치는 3억4700만엔(35억원)의 흥행 매출을 기록했다. 안노 감독은 실패를 발판삼아 당시 마크로스의 ‘민 메이’ 등 미소녀 캐릭터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미키모토 하루히코(美樹本晴彦)를 기용해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등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톱을 노려라 주인공 타카야 노리코. 성우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히타카 노리코가 맡았다. / 야후재팬 갈무리
또, 주인공 ‘타카야 노리코’ 목소리 연기자로 당시 인기 성우였던 ‘히타카 노리코(日髙のり子)’를, 오프닝과 엔딩곡을 부른 가수로 당시 일본의 인기 아이돌 가수였던 ‘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를 기용해 ‘트리플 노리코’ 작전을 펼쳤다. 마케팅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셈이다.

비디오테이프와 레이저디스크 등 매체에 담아 판매되는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 형식으로 공개된 ‘톱을 노려라’는 모두 6편으로 나뉘어 시장에 출시됐으며, 1편당 평균 3만장이 팔리는 등 성과를 냈다.

1980년대 당시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담은 레이저디스크는 장당 5000엔(5만원)에서 1만엔(10만원)쯤에 팔렸다. 애니메이션 LD 장당 가격을 5000엔(5만원)이라고 보수적으로 계산을 해도, 톱을 노려라는 최소 9억엔(9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980년대 OVA 제작비는 한 편당 2500만엔(2억5300만원)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6편을 제작한 톱을 노려라의 총 제작비는 1억5000만엔(15억원)쯤이다.

거대 로봇 건버스터. / 야후재팬 갈무리
당시 가이낙스 대표였던 오카다 토시오에 따르면 톱을 노려라의 기본 스토리는 미국 SF작가 조 홀드먼(Joe William Haldeman)의 SF소설 ‘끝 없는 전쟁(The Forever War)’에서 가져왔다.

톱을 노려라는 우주괴수와 전투에서 전사한 우주함대 제독의 딸 노리코의 이야기를 그렸다. 노리코는 로봇 파일럿 양성학교에 입학해 코치인 오오카 코우이치로의 특훈을 받아 거대로봇 병기 ‘건버스터’ 조종사가 된다. 이후 인류의 미래를 걸고 전투를 벌인다.

인류의 존망을 건 최종결전을 통해 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겨우 승리를 거머쥔 노리코는 버스터 머신 3호로 인해 발생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며, 1만2000년 뒤 지구로 돌아온다. 지구는 그를 영웅으로 떠받친다. 톱을 노려라는 아직도 많은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종결전 한장면. / 야후재팬 갈무리
1988년 등장한 '톱을 노려라'는 영상미와 드라마성을 중시했던 1980년대 OVA 콘텐츠의 금자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우수 SF작품에 수여되는 ‘일본 SF어워드 성운상(星雲賞)’에서 미디어부문 수상작이 됐다.

◇ 부활의 신호탄 쏴 올린 ‘톱을 노려라’

애니메이션 기획사 ‘스튜디오 가이나’는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톱을 노려라3’(가칭)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이나는 일본의 주택판매회사 키노시타 그룹의 자회사로, 그룹 대표 겸 영화 프로듀서인 ‘키노시타 나오야(木下直哉)’가 회장으로 있다.

가이나는 1990년대 가이낙스가 기획한 후 제작하지 못한 극장 애니메이션 ‘푸른 울(蒼きウル)’, ‘톱을 노려라3’, ‘하품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등은 물론 어린이용 TV애니메이션 ‘레스큐 아카데미’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푸른 울’ 이미지 보드. / 가이나 갈무리
2022년 전 세계 극장에 개봉될 예정인 ‘푸른 울’은 가이낙스의 첫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왕립우주군을 만들었던 가이낙스의 대표 야마가 히로유키(山賀博之)가 감독을 맡는다.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사다모토 요시유키(貞本義行)가 참가한다.

2004년 공개된 ‘톱을 노려라2’. / 야후재팬 갈무리
‘톱을 노려라3’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제작 계획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1980~1990년대 톱을 노려라로 인생이 바뀌었을 법한 3040세대 애니메이션 마니아는 작품의 제작 계획 발표에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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