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만화 ‘우주해적 코브라(COBRA The Space Pirate)’는 왼팔에 고성능총 ‘싸이코건'을 장착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같은 남자 ‘코브라'의 활약을 그렸다. ‘코브라'는 일본 만화지만 미국 만화 느낌을 주는 그림과 성인 취향에 맞는 SF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코브라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코브라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코브라는 먼 미래, 인류가 자가 우주선으로 행성을 오갈 수 있는 시대를 무대로 했다. 만화는 무역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주인공은 심심풀이로 뇌에 직접 신호를 전달해 꿈을 꾸게 하는 오락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상의 꿈 속 주인공은 왼팔에 싸이코건을 착용한 우주해적 코브라가 돼 나오며, 파란만장한 꿈 이야기는 현상금 수배자가 된 주인공이 해적 집단에 쫓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꿈 내용에 만족한 주인공은 자신이 본 가상의 꿈에 대한 내용을 기계를 만든 TM사 담당에게 말하지만, 담당자는 그런 꿈을 프로그램한 적이 없다고 밝힌다.

가상의 꿈을 즐기고 돌아가는 주인공은 우연한 사고로 꿈 속에서 본 해적 ‘바이켄'을 만난다. 주인공은 바이켄이란 이름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바람에 살해 위협을 받게 되며, 절체절명의 순간 왼손이 싸이코건으로 변해 적을 물리친다.

주인공은 이 사고를 계기로 자신이 우주해적 코브라였으며, 피비린내 나는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기억을 지우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꾼 것을 기억하게 된다. 기억을 되찾은 코브라는 과거 파트너였던 여성형 안드로이드 ‘레이디'와 함께 위험으로 가득찬 우주로 날아간다. 스릴있는 인생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코브라 만화 도입 부분은 SF거장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와 흡사하다. 필립 K. 딕의 이 소설은 영화 ‘토탈 리콜' 스토리의 근간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영화 ‘스타워즈' 방영에 따른 영향으로 SF 작품의 인기가 한창 높았다. 1978년 등장해 2018년 들어 탄생 40주년을 맞은 만화 코브라 역시 미국발 SF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의 SF 붐 속에서 태어난 명작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킨들 버전 만화 코브라 1권 표지. / 아마존재팬 갈무리
킨들 버전 만화 코브라 1권 표지. / 아마존재팬 갈무리
만화 코브라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유머 코드와 미국 만화 스타일의 그림체 탓에 일본 현지보다 미국과 유럽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브라를 탄생시킨 만화가 테라사와 부이치(寺沢武一)에게도 우주해적 코브라는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테라사와는 1976년, 일본의 만화신(神)이라 평가받는 만화가 테츠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수석 어시스턴트로 만화계에 입문했으며, 1977년 단편 만화 ‘대지여 푸르러라(大地よ、蒼くなれ)’로 만화상인 테츠카상을 받고, 같은 해 단편 만화 ‘코브라'가 주간소년점프에 실리면서 프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테라사와는 코브라 만화를 그리기 전 ‘시그마45’라는 단편 만화를 공개했다. 60 페이지 분량으로 제작된 이 만화는 주인공인 오메가본의 여성 요원 ‘제인’이 왼팔에 45구경의 총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코브라의 프로토타입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브라 프로토타입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그마45’. / 야후재팬 갈무리
코브라 프로토타입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그마45’. / 야후재팬 갈무리
우주해적 코브라 연재로 ‘성공한 만화가' 대열에 들어선 테라사와는 1987년 자신의 이름을 딴 테라사와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한다.

만화 코브라는 현재 ‘원피스' 등이 연재되고 있는 일본 현지 인기 만화잡지 주간소년 점프에서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됐다. 이후에도 슈퍼점프, 코믹플래퍼 등 만화잡지를 바꿔가며 만화 코브라 연재를 이어갔다.

코브라 만화는 2006년에 최신 에피소드가 일단락됐지만, 원작자인 테라사와가 작품을 종료한다고 선언하지 않았고, 2008년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코브라가 제작돼 일본 현지 방영됐기에 얼마든지 코브라의 다음 이야기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

◇ 애니메이션으로 존재감 높인 코브라

주간소년점프에서 코브라 연재가 끝나가던 무렵인 1982년, 일본 현지 극장가에 개봉된 ‘스페이스 어드벤처 코브라'는 만화 코브라를 소재로 만든 첫 번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 ‘문신한 여자'와 ‘황금의 문'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영화와 잡지 등을 제작하던 키네마순보사에 따르면, 이 극장 애니메이션은 3억엔(30억원)의 흥행수입을 기록했다.

스페이스 코브라. / 야후재팬 갈무리
스페이스 코브라. / 야후재팬 갈무리
만화 코브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작품은 1982년 10월 일본 현지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코브라'다. 이 애니메이션은 코브라 팬 사이서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원작 만화를 충실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TV판 코브라 애니메이션은 원작자 테라사와의 그림체 특징인 여성 캐릭터의 육감적인 누드 장면이 일부 수정되는 등 에로티시즘 보다 코브라의 액션에 초점을 맞춰 제작됐다.

스페이스 코브라 주제가는 1988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한 가수겸 여배우인 ‘마에노 요우코(前野曜子)’가 불렀다. 마에노의 코브라 오프닝곡은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린 명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이스 코브라 오프닝 영상. / 유튜브 제공

애니메이션 제작사 매직버스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코브라 더 애니메이션(COBRA THE ANIMATION)'이라는 이름의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 작품 6편을 제작한다.

코브라 탄생 30주년 기념작인 이 애니메이션은 만화 원작에서 영상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내용을 선별해 ‘더 싸이코건' 4편과 ‘타임 드라이브' 2편이 제작됐다.

코브라 더 애니메이션. / 야후재팬 갈무리
코브라 더 애니메이션. / 야후재팬 갈무리
매직버스는 2010년 위성방송 BS11을 통해 총 13편으로 구성된 두 번째 코브라 TV 애니메이션을 방영한다. TV판 ‘코브라 더 애니메이션'은 1982년작 TV판과 같이 원작 만화를 충실하게 영상으로 담아내는 형태로 구성됐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팬층을 쌓은 코브라는 이후 등장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기작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등장하는 주인공 케로로의 숙적 ‘바이퍼'는 코브라를 패러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