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은 지난 2010년부터 ‘산불상황관제시스템’을 도입해 운영중이다. 각 지방자치단체 산불 감시원이 산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산불이 발생하면 차고 다니는 신고 단말기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화재발생 위치가 GPS로 상황실에 전달된다. 상황실 고해상도 항공사진 위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GPS와 GIS 활용한 정보시스템이다.

강원도만 산불감시원이 2650명이다. 문제는 이들만으로 그 넓은 강원도 지역 산불을 모두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등산객과 농부를 비롯한 일반인의 신고 참여가 절실하다. 하지만 여기엔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이 법은 재난재해 상황에서 상당한 짐이 된다. 소방청을 비롯한 국가 기관은 위급 상황 발생 시 GPS나 통신 기지국을 기반으로 개인 위치정보 조회를 한다. 하지만 개인정보 이용동의를 받지 않으면 활용은커녕 아예 신고조차 받지 못한다.

5일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불에 탄 가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다. / 조선일보 DB
5일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불에 탄 가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다. / 조선일보 DB
국민들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여러번 겪었다. 국내 은행, 이통사, 쇼핑업체, 심지어 외국 소셜미디어까지 많게는 한번에 수천만명의 개인정보를 해커에게 내어주는 등 보안 취약점을 보였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결제 정보, 주소까지 털린 정보도 다양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내 모든 정보가 세계로 퍼져나가 더이상 털릴 게 없다’고 자조한다..

중국 공안은 인파가 몰린 기차역 등에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누가 현장을 지나가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범죄자를 찾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침해 현장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한국 정부는 2012년 정보 보호 강화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했다.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 확산을 막으려는 조치다. 사업자는 개인이 누구인지 특정할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정보 수집은 물론 정보 결합을 통한 개인 특정 정보 수집도 해선 안 된다. 결제 서비스 제공 업체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 이용이 가능하지만, 극도로 제한적으로 쓴다.

이 개인정보보호법이 재난 재해 발생 시 ‘취약성’을 드러낸다. 소방청이나 경찰청 등은 업무 특성상 ‘최초 신고자’의 신고에 상당히 의존한다. 그런데 개인정보 중 하나인 ‘위치정보’를 사용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신고자 위치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화재, 범죄의 경우 신고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 더욱이 소방청은 경찰과 달리 ‘무선 전화’ 신고자의 현 위치 파악 불가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복잡한 동의절차를 구한 다음에야 위치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카카오택시와 같이 개인 동의 하에 정확한 위치를 전달하는 ‘위치정보’ 솔루션을 정부기관에도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카카오맵이 최근 도입한 위치정보시스템을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세계 지도 상 모든 위치를 3m×3m 격자 단위로 나눠, 단어 3개를 조합해 만든 정밀기술인 ‘W3W’라고 있다.국외에선 의료·구난·여행·물류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쓰인다. 카카오가 이 기술을 만든 영국 스타트업 ‘왓쓰리워즈’(what3words)와 제휴를 통해 카카오맵에 탑재했다.

스마트폰 기반 ‘콜택시’ 앱인 카카오택시나 T맵택시 이용자는 가입 후 개인정보 이용을 허가한다. 택시가 도착해야 할 장소를 정확하게 지정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직접 위치정보 이용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다. 재난 재해 상황에서는 콜택시 앱과 달리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위치 정보를 즉각 확인할 수 없다.

스마트폰 산불신고 앱만 해도 신고자 연락처, 카메라 접근, 위치정보 사용 동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동의를 받는다. 중간이라도 동의를 하지 않으면 즉각 앱이 종료된다. 119 화재신고 앱도 동의 절차는 거의 같다.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은 대략적인 위치를 빨리 알려줄 수 있다. 유선전화로 화재신고를 할 경우 정확한 위치 설명이 어려워 시간이 더디 걸린다.

산불신고앱의 신고자 위치정보사용동의절차 화면 갈무리
산불신고앱의 신고자 위치정보사용동의절차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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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신고앱처럼 총 4단계의 권한 허용을 묻는 119앱 화면 갈무리
산불신고앱처럼 총 4단계의 권한 허용을 묻는 119앱 화면 갈무리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추진 중인 업체 한 관계자는 "재난 사고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 신고자가 알려주는 위치정보"라며 "현행법상 개인 위치를 임의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범국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위치정보 기반 재난재해 맵 서비스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콜택시 앱처럼 신고자가 재난 지역의 정확한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줄 경우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조언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임의로 지정해 제공할 수 있는 ‘T맵택시’ 앱 실행 장면. / T맵택시 앱 갈무리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임의로 지정해 제공할 수 있는 ‘T맵택시’ 앱 실행 장면. / T맵택시 앱 갈무리
정부나 재난 기관이 주요 기관별로 사용하는 지번(도로명) 주소, 국가지점번호, 전봇대 일련번호 등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지도 앱을 만들고, 국민 누구나 재난 사고를 신고할 때 정확한 위치정보를 제공하면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위치정보 관련 업체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강원도 화재 사건도 그렇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재난재해 발생 시 위치정보 확인이 어려워 일이 커졌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런 말만 반복하지 말고 통신망이 촘촘히 깔린 한국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가가 공공 빅데이터와 지도앱을 결합한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위치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동의해 위치를 알려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