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실패도 품어주는 문화가 혁신 비결”

입력 2019.06.11 06:00 | 수정 2019.06.11 07:19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드는 IT시장 큰 손이라는 점, 그리고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 혁신 기업을 키워낸 공간이다. IT조선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아 혁신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달리는 주요 인물을 만나 그 비결을 탐구한다. [편집자주]

구글과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이 원천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포드와 GM 등 기존 제조업체들 역시 기술력을 모두 쏟으며 경쟁 가도에 뛰어들었다. 향후 수조원 규모 시장이 열린다고 예상되면서다. 자율주행차 시장 이야기다.

이런 거대 기술기업 각축장 틈에서 눈에 띄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팬텀(Phantom)AI’다. 팬텀AI는 조형기 대표와 이찬규 대표가 2016년 만든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다.

IT조선은 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외곽 소규모 도시 벌링게임(Burlingame)에 위치한 팬텀AI 본사에서 조형기 대표를 만났다.

조형기 팬텀AI 대표./ IT조선
◇ 작지만 강한 기술 스타트업

팬텀AI는 작지만 강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이다.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등이 수집한 환경에 대한 센싱 정보를 한데 모아 분석하는 운전자보조시스템의 (ADAS) 종합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뇌'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팬텀AI는 현재 미국 완성차 업체 2곳과 글로벌 티어원(Tier1, 1차 부품 공급사) 기업 2곳 등 총 4개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팬텀AI 솔루션이 완성차 업체가 개발한 운전자보조시스템에 탑재되는 방식이다. 곧 팬텀AI 솔루션을 심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될 예정이다. 20명의 팬텀AI 소속 직원들은 컴퓨터공학과 로보틱스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다.

특히 팬텀AI는 자율주행 레벨4에 해당하는 라이다 센서를 활용한 고정밀도 지도 기술과 오브젝트 트랙킹 기술을 확보해 업계 주목을 받는다. 이런 기술력을 기반으로 2017년 7월 520만달러(62억6000만원) 규모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아직 기술 우위를 점한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설립 4년차 스타트업이 구글, 아우디, 현대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웨이모가 현재 레벨4 기술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는 2021년 4단계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은 여섯 단계로 나뉜다. 레벨0(Level 0)은 주행 보조 장치가 전혀 없는 차량, 즉 사람이 주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벨1은 주행의 보조적인 단계로 자동 속도 조절, 긴급 제동, 차선 유지 등 운전자를 보조하는 정도다. 레벨2는 부분적 자동화로 자율주행 시스템에 의해 방향이나 가감속 등이 실행되나, 운전자의 주의가 여전히 많이 요구된다.

레벨3는 반자율주행 단계로 차량이 자율주행 시스템을 통해 전반적인 안전 기능 및 운전 기능을 수행한다. 여전히 운전자 제어가 요구되지만, 레벨2 보다 긴 시간 운전에서 눈을 뗄 수 있다. 팬텀AI가 원천기술을 확보한 레벨4는 고도의 자율주행 단계로 운전자 없이도 자율주행 시스템이 차량을 전부 제어한다. 주변 환경과 비상 시 대처 등 주행에 필요한 모든 프로그램이 작동된다. 5단계가 운전자 개입이 필요없는 완전한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다.

◇ 실리콘밸리서 창업한 이유 "실패 용인하는 문화"

조형기 공동 대표는 2008년 카네기멜론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창업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자율주행 기술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될 거란 확신을 갖게 됐다. 그가 자율주행 관련 창업을 결심한 이유다.

그는 교수가 되려던 계획을 접고 졸업 후 테슬라에 입사했다. 자율주행과 관련된 실무를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그는 테슬라에서 2년 6개월 간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창업을 위한 모든 기회가 응축된 곳이다"라고 말했다. 투입되는 벤처캐피탈 투자액도 규모가 엄청나다고 느꼈고 실제로 그랬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는 스탠포드대학교, 버클리대학 등 유명 대학의 수많은 IT 인재와 구글과 페이스북 등 한 손안에 꼽히는 글로벌 IT기업이 모인 공간이기도 했다.

물론 창업 후 얼마되지 않아 문을 닫는 회사도 적지 않다. 조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는 실패한 이들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제공해 성공할 수 있는 곳이다"라며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이해해주는 곳이 실리콘밸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투자 유치 기회만 보고 그저 낙관하지 않는다"며 "망하는 회사도 많이 봤지만, 망하지 않기 위해 정말 갖은 노력을 하며 치열하게 사는 기업인을 지켜보며 역시 실리콘밸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낯선 이방인 창업가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특히 자율주행 기술을 꽃피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당국 허가만 받으면 시내에서 마음껏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험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곳곳에는 여러 기업이 만든 자율주행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낯선 한국인 창업가가 이끄는 자율주행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어려웠다. 기술기업이라는 특성과 그들 눈에는 낯선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 생산 단계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자금을 유치한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아직 제품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자율주행 기술 자체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제품 판매 성과가 존재할 수 없다. 투자 유치를 위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수치가 없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기술이 향후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비전만으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했다"며 "여기에 회사와 자율주행 산업 비전을 중심으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했지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각각 6개 레이더와 카메라가 장착된 팬텀AI 자율주행 3단계 솔루션을 탑재하고 상용화를 앞둔 자율주행차. / IT조선
◇자율주행이 바꿀 세상 ‘모든 이들에게 이동권을’

팬텀AI는 3단계 기술 솔루션을 자율주행 2단계 자동차에 붙여 상용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일반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수준부터 활용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직은 자율주행차 업계가 내놓는 자율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에는 멀다고 판단한 것이 배경이다.

운전자 없이도 자동차 스스로 안전한 자율주행을 하는 기술은 4단계부터다. 하지만 4단계가 상용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4단계는 예측 기술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갈지, 차로 뛰어들지도 AI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도로 인프라 조성도 향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거의 모든 교통 시설은 인간의 눈에 잘 띄도록 최적화돼 있다. 카메라와 레이더 등 자율주행 자동차 센서가 인식하기에 다소 부적합한 것들이 많다. 현재로선 모든 도시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달리기 적합한 ‘스마트시티'이길 바라는 것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업계는 자율주행차가 그릴 미래에 큰 기대감을 품는다.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해방되면, 차 안에서 즐길 콘텐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차량으로 이동할 때 앞유리가 원격 회의 영상으로 바뀌면, 자동차 내부 공간이 하나의 회의실로 탈바꿈될 수도 있다. 주행 중 음악이나 영화,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일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자율주행 기술에 기대가 큰 이유는 운전을 직접 하지 못하거나 이동에 여러 제약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도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조 대표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는 자율주행 기술이 발이 돼 줄 수 있다"며 "자동차가 발명됐을 때 만큼의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이동 과정에서 발생했던 속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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