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한국에서 개사 되고 만들어진 코난 주제가는 애니메이션 공개 41년이 지난 지금도 30·40세대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未来少年コナン)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 손에 의해 탄생해 1978년 일본 NHK를 통해 방영됐다.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늦은 1982년 KBS1을 통해 소개됐다.

미래소년 코난 오프닝·엔딩 영상. / 유튜브 제공

한국어 버전 주제가의 경우 KBS 버전을 배우 민경옥, MBC 버전을 가수 김국환, 정여진이 불렀다. 일본 원판 주제가 ‘지금 지구가 눈을 뜬다'의 경우 가수 ‘카마타 나오요시(鎌田直純)’, ‘야마지 유우코(山路ゆう子)’가 함께 불렀다.

유명 애니 감독들에게 영향 준 ‘미래소년 코난’

전 세계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명작'으로 손꼽는 미래소년 코난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처음으로 감독으로 제작을 진행한 작품이다. 명작으로 칭송받는 코난이지만 시청률은 1978년 첫 번째 방영 당시 관동지역 기준 평균 8%, 최고 14%에 머물렀다.

미래소년 코난 사운드 트랙 자켓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미래소년 코난 사운드 트랙 자켓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미래소년 코난은 이후 등장한 애니메이션과 영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84년 출간된 나우시카 관련 서적에 따르면 미야자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인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작화감독을 담당했던 코오사카 키타로(高坂希太郎)의 경우,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본 미래소년 코난에 반해 미야자키 감독과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브리 하청업체인 오!프로덕션에 입사했다.

‘기동전사 건담’을 창조한 인물인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도 미래소년 코난 제작에 참가한 바 있다. 현지 매체 인터뷰에 따르면 토미노 감독은 1982년작 ‘전투메카 자붕글' 제작 시 코난을 모방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 ‘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 설정 자료집으로 애니메이션 그림 레이아웃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자키 감독의 오른팔'로 평가받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 제작을 통해 그림 속에 캐릭터를 표시하는 ‘전략적 연출'을 배웠다고 미야자키 감독이 현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1995년작 할리우드 영화 ‘워터월드'도 미래소년 코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코난 명장면 ‘수중 키스'. / 야후재팬 갈무리
코난 명장면 ‘수중 키스'. / 야후재팬 갈무리
2006년작 ‘풀메탈패닉!’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 ‘의외로 한가한 전대장의 하루' 속에는 미래소년 코난의 명장면이라 평가받는 코난과 여주인공 라나의 수중 키스신을 오마주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원작의 냉전·디스토피아 세계를 소년 모험활극으로 바꾼 ‘코난'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은 1979년 세상을 떠난 미국 소설가 '알렉산더 케이(Alexander Hill Key)'의 소설 ‘남겨진 사람들(The Incredible Tide)'이다.

원작 소설은 초자력 무기로 인류가 스스로 멸망해버린 지구를 무대로 17살 소년 코난이 독재자 다이스가 군림하는 공산주의 사회 ‘인더스트리아'에 맞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이야기 배경으로 삼는 등 정치색이 강한 작품이다. ‘플란다스의 개' 등 세계명작극장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나카지마 쥰조(中島順三)’에 따르면 미야자키 감독은 소설의 정치적인 요소가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소설 내용대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소설의 설정과 스토리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

미래소년 코난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미래소년 코난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미야자키 감독이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NHK와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본애니메이션은 코난이 아닌 미국 작가 프랜시스 버넷의 ‘비밀의 화원'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나카지마는 1970년대 애니메이션 붐을 고려해 초등학교 5~6학년생이 즐길 수 있는 모험 활극을 제안했고, 이로 인해 당초 제작 예정에 없던 미래소년 코난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소설을 기반으로 등장인물 배역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애니메이션에서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간 최종전쟁은 2008년 발발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애니메이션 속 초자력병기는 핵무기 이상의 위력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지구상의 다섯 개 대륙의 지형과 지축이 뒤틀어지면서 전 세계 수 많은 도시가 바닷속으로 잠긴다.

코난의 이야기는 전쟁으로부터 20년 뒤의 이야기다. 소년 코난은 추락한 우주선의 생존자로 할아버지와 함께 섬에서 생활하고 있다. 코난은 어느 날 섬 해안으로 표류한 소녀 ‘라나'를 만난다. 라나는 과학도시라 불리는 인더스트리아에서 온 전투대원에게 납치당하고, 코난은 전투원들에게 죽임을 당한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라나를 구하기 위해 인더스트리아로 향한다.

인터스트리아는 전쟁시대 남겨진 거대 삼각탑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레프카' 등 인더스트리아 지도자는 ‘태양 에네르기 시스템'을 부활시키기 위해 관련 기술을 가진 라오 박사를 찾고 있었다. 라나는 라오 박사의 손녀다. 레프카는 태양 에네르기 시스템으로 도시 지하에 보관되고 있는 폭격기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래소년 코난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미래소년 코난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코난은 모험길에 만난 동료와 인더스트리아 도시 지하게 사는 주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독재자 레프카를 물러나게 하는 데 일단 성공한다. 이후 지각변동으로 인더스트리아에 위기가 닥치고 라오 박사는 주민들의 탈출을 위해 태양 에네르기 시스템을 부활시킨다.

하지만, 몇몇 부하와 함께 인더스트리아로 돌아온 레프카는 테양 에네르기로 폭격기 기간트를 부활시킨다. 코난과 동료들은 기간트에 올라 레프카와 다시 싸우게 되고, 싸움에서 진 레프카는 추락하는 기간트와 함께 운명을 함께하게 된다.

코난과 라나는 이야기의 시작점인 ‘남겨진 섬'으로 돌아온다. 섬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새로운 땅으로 변했고, 코난 일행은 신천지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한다.

단순 TV 시리즈 편집작에 그친 극장판 미래소년 코난

미래소년 코난이 일본 현지에서 인기를 끌자 일본애니메이션은 코난 극장판을 계획한다. 현지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일본방송이 극장판 기획에 참가하고 영화사 토에이가 제작협력과 영화 배급을 하는 것으로 극장판 제작이 결정됐다.

미야자키 감독은 TV판을 편집해 극장 영화로 만드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감독은 속편 이야기를 담아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감독직을 수락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미야자키 감독의 반대에 부딪힌 토에이는 영화감독 ‘사토 하지메'를 극장판 코난 감독으로 지명해 TV판을 편집한 코난 영화를 만든다. 또, 영화 홍보를 위해 1979년 7월 일본무도관에서 ‘코난 페스티벌'을 열어 애니메이션 팬 1만명을 모으기도 했다.

토에이의 영화 띄우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미야자키 감독 의견대로 새롭지 않은 TV판 편집본 영화에 팬들의 비판이 빗발친 것이다. 명작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블루레이 등으로 복각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코난 극장판은 1984년 비디오테잎과 레이저디스크(LD)로 출시된 것을 빼면 더 이상 판매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