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②주송현 아트투게더 아트디렉터 ‘미술시장에서 본 미술가와 AI ART’

미술 역사를 돌이켜보면 화가들은 모두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재료와 도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가득 채운 작품을 살펴보면 어디서 찾은 건지 재주가 놀라운 물건이 작품으로 변모해 전시된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우리가 잘 아는 마르셀 뒤샹은 철물점에서 산 화장실 소변기를 이용한 작품 ‘샘(Fountain)’으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었다. "세상의 모든 회화는 보완된 레디메이드이고 동시에 아상블라주 작품"이라며,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물건을 미술관에 가져와 본래의 기능을 증발시키고 예술적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시켰다.

20세기 후반의 미술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새로운 미술은 늘 당대를 위시한 최신 기술의 전람회였다. 기술이야말로 미술이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예술적 활로를 개척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動因)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미술가의 작업실은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이 ‘팩토리’라고 명명한 이래 공장과 실험실에 더 가까운 곳이 되었다.

‘포스트 디지털’ 또는 ‘포스트 미디엄’이라는 디지털 이후의 매체 현상을 논하는 시대다. 휴머니즘을 넘어 ‘포스트 휴머니즘’ 혹은 ‘트랜스 휴머니즘’을 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과거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고와 신체의 확장을 가능케 했다면 지금은 ‘기계의 인간화’에 관여한다.

인공지능(AI) ART가 세계 화단에 출현한 후 미술계는 이를 기회로 볼 것인지 위협으로 볼 것인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점차 미술가를 닮아가는 AI ART 때문이다. 이제는 미술가가 물감을 만지지 않고도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무한한 연산과 자기학습능력을 갖춘 AI가 등장한 후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전까지 물감은 미술가 손에 쥐어진 붓의 대체 수단이었다. 이제는 도구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주체가 되기를 염원한다. 일례로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에서 선보인 대화형 챗봇 AI ‘샤오빙(Xiaoice)’이 그림을 본 후 지은 시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본 시작법에 따라 지은 시보다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AI ART는 먼 나라 이웃 얘기가 아니다. 최근 한국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투게더는 극사실주의 화가 두민과 펄스나인의 이메진 AI가 협업해 완성한 작품 ‘Commune with…’를 소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해당 작품에 높은 금액이 모집돼 한국 미술시장의 진입에도 성공했다.

앞으로도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며 더욱 견고해질 예정이다. 지금이야말로 미술가와 AI ART의 관계를 논의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다. 새로운 형식의 예술 등장은 이미지 접근 가능성이 대중적으로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키는 건 수집가(컬렉터)’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화랑이 작가를 발굴하지만, 결국 작가를 키우는 건 컬렉터의 몫이다.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컬렉터가 있어야 작가가 살고 화랑이 살고, 나아가 미술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AI ART가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컬렉터가 모이는 곳인 미술시장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술시장은 크게 1차, 2차 시장으로 구분된다. 대체로 1차 시장은 작가와 갤러리, 아트페어가 해당한다. 2차 시장은 매매가 한 번 이상 이뤄진 작품이 거래되는 경매회사다. 먹이사슬처럼 얽혀있는 미술시장의 구조보다 더욱 난해하고 모호한 것은 미술품의 가격이다. 작품이 판매될 때 갤러리스트의 친절한 작품 가격 설명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고객을 종종 목격한다. 이는 미술품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작품 가격을 형성할 때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조건들(작가의 이름, 우수성, 기량, 주제, 그림의 상태, 크기, 진품 여부, 작품의 출처) 외에도 미적 가치 평가와 시장 상황 등이 반영돼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작품에는 캔버스, 물감, 액자값뿐 아니라 작가의 땀과 열정, 예술성에 따른 면벽 수행의 시간이 담겨 있다.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자식처럼 귀한 작품이다. 문제는 미술현장, 미술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 논리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작가와 구매자, 갤러리 모두가 만족하는 합당한 가격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매자는 구매 가격이 낮을수록 좋고, 공급자인 작가는 작품 가격이 높을수록 좋다. 중간에서 유・무형의 노고로 거래를 성사시킨 갤러리 역시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건 당연지사다.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AI ART는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 중요 축인 작가의 영감과 철학이 담겨있지 않다. 그렇다면 미술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을까?

놀랍게도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AI 화가인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가 예상가보다 40배 더 높은 43만2500달러(약 4억9000만원)에 팔렸다. 한국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투게더에서 선보인 극사실화가 두민과 펄스나인의 이메진 AI가 협업한 작품 ‘Commune with…’는 2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집됐다.

루이스 멈퍼드는 1952년 출간된 저서 ‘Art and Techniques’에서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역설했다. 기술은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구성적인 측면을 대변하므로 그 둘을 결합해 활성적인 관계를 맺게 해야 한다는 요지다. 인간이 기계의 무력한 동반자나 수동적인 희생자가 되는 대신, 기계를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해 상실한 개성, 창의성, 자율성 등의 기본 속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목표는 "예술은 고양되고 상상력은 강화되며 평화는 모든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인데, 이때 예술은 기술을 활성 촉매로 활용해 삶의 두 가지 측면인 예술과 기술이 관계 맺기 한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둘러싼 상황이 재편되고 있다. 공간에 선을 쌓아 올려 입체를 만드는 3D 펜, 가상현실 드로잉 도구 등이 이미 예술 도구로 사용된다. AI 소프트웨어가 명화를 신속하게 모사할 뿐 아니라 동일한 화풍으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미술시장에서 보란 듯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에 AI ART의 등장은 예술의 정의를 새로고침 하도록 유도한다. 어찌 보면 이는 항시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예술이 갖는 필연적인 운명인지도 모른다.

비판으로서의 AI ART와 능동적 관찰자로서의 컬렉터는 미술시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남의 깊이를 더한다. 따라서 미술시장도 AI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감각의 세계 또는 기술적 발전에 탄성만 연발할 게 아니다. AI ART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가치와 가격을 만들고 소개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모든 예술 세계는 처음이 중요하다. 처음은 곧 ‘새로움’을 뜻한다. 후대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역사적 가치를 내포한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게 중요하다. 이전 작가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크게 기억되지 않는다. 새로운 누군가가 등장하고 그 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는 역사적인 영향력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가치를 보상받게 된다. 피카소의 작품이 비싼 이유도 입체파 특징이 담긴 작품에 미술사적 가치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AI ART는 동시대 미술을 대변하는 ‘새로움’의 기념비적 장르다. 아울러 미술가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새로운 예술기제로 수용할 때 미술의 혁명적 진화가 이뤄지고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마르셀 뒤샹)

위에서 소개한 뒤샹의 말을 조금 바꿔보자. 50년, 100년 후엔 어떤 작가들이 살아남을까? 어떤 작가가 비싼 작품을 팔 수 있을까?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AI ART가 종횡무진하며 미술가들과 해당 시장을 흥미진진하게 채워나가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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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송현 아트투게더 아트디렉터는 8년간 대학에서 예술경영과 미학 등을 강의했다. 아트투게더 AT 갤러리에서 미술시장 관련 강연을 다수 진행하기도 했다. 경제매체에 ‘알면 돈 되는 미술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미술 대중화에 힘쓰고자 강연과 교육, 전시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