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억원 규모(191개)의 비트코인이 국고에서 꿀잠을 자고 있다. 범죄에 연루돼 국고로 귀속된 비트코인을 정부가 처분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대검찰청,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가 공동주최한 ‘2019년도 과학수사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기술 발전에 따른 형사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했다.

최상훈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범죄수익으로서 비트코인 몰수 사례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IT조선
최상훈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범죄수익으로서 비트코인 몰수 사례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IT조선
비트코인은 왜 국고에서 잠을 자고 있나

최상훈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이날 행사에서 ‘범죄수익으로서 비트코인 몰수 사례분석’을 주제로 강연했다.

최 검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8년 5월 A씨를 상대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트코인 몰수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했다. 그는 운영과정에서 이용자로부터 비트코인을 이체받았다.

사건 당시 1심은 비트코인(BTC)가 물리적 실체가 없다며 몰수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어 졌다. 법원은 BTC를 물건이 아닌 사회적 통념에 따른 재산으로 봤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비트코인 생성, 보관, 거래 공인 ▲게임머니가 ‘재화’에 해당하는 만큼 비트코인 재산적 가치 인정 ▲압수물 통일성 유지 ▲환전 가능 여부에 따른 경제적 가치 부여 ▲미국 실크로드 판결 등 해외 사례 참고 ▲음란사이트 이용을 위한 경제적 가치로 활용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입법 취지로 비트코인 몰수를 인용했다. 이때 몰수된 비트코인은 191 BTC다. 당시 가격으로는 6억9587만원이다

다만 몰수가 인용됐다고 해서 비트코인 재물성이 인정된 건 아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몰수 대상을 형법상 ‘재물’ 개념이 아닌 ‘재산’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최 검사는 "해당 판결 사례로 비트코인이 범죄 수익에 해당함을 특정했다"며 "해외 판결 및 사례 역시 (암호화폐) 몰수를 인용하고 있어 국제적 추세에도 해당 판결은 부합하다는 의견을 대법원을 통해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처분은 감감무소식…해외에선 즉각 경매

처분은 1년 6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범죄로 인해 귀속된 재산을 3개월 안에 처분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법원은 처분 결정이 내려지면 캠코 자산처분 시스템 온비드를 통해 경매에 부쳐진다.

이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에 비트코인 입찰가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 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비트코인 법적 성격 역시 정해지지 않은 것도 이유다.

검찰압수물사무규칙(법무부령 231호)에 따르면 몰수물 처분방법은 크게 공매 처분과 폐기 처분, 국고납입 처분, 인계 처분, 특별 처분 등으로 나뉜다. 검압규 28조에 따르면 몰수물이 유가물일 땐 공매 처분을 실시한 후 그 대금에 대해 국고납입 처분을 해야 한다. 무가물일 경우에는 검압규 29조에 따라 폐기 처분한다. 몰수물이 환가대금이나 통화, 유가증권 또는 외국환일 경우엔 검압규 30조에 따라 공매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고납입 처분을 한다.

법원이 비트코인을 재산으로 판단해 국고로 귀속했지만 마땅히 처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검 한 관계자는 "공매 절차와 관련해 확립된 정책이 아직 없다"면서도 "대검에서 아직 귀속된 비트코인을 어떻게 처분할 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또 해외 사례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해외에서는 몰수 직후 비트코인을 경매에 부쳐 현금화한 뒤 국고에 귀속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 ‘실크로드’다. 미국 법원은 2014년 마약 밀거래 사이트 ‘실크로드’가 보유한 비트코인 2만9656개(당시 1800만달러, 약 208억원)와 사이트 운영자 개인 컴퓨터에서 발견된 14만4341개(당시 8600만 달러, 약 875억원)를 압수했다. 몰수된 비트코인은 이메일 공매 절차를 거쳐 현금으로 교환한 후 국고에 귀속했다. 독일과 호주 등에서도 암호화폐를 몰수한 직후 경매에 부쳤다.

일각에선 비트코인 가치 변동에 따른 수익성을 이유로 정부가 일부러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박주현법률사무소 황금률 대표변호사는 "법령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서둘러 처분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수일 수 있다"며 "다만 (몰수 처분을) 방치하는 것은 국부를 증진하는 효과는 있지만,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고려할 때 처분 절차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