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이라는 훌륭한 의류 클러스터, 원단 생산자들의 기술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한번 원단의 시대가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패브릭타임'이라고 회사명을 정했습니다."

이우석 패브릭타임 이사 / 패브릭타임 제공
이우석 패브릭타임 이사 / 패브릭타임 제공
원단마켓플랫폼 이우석 패브릭타임 이사의 말이다. 패브릭타임은 의류 원단 정보를 디지털화, 해외 디자이너나 의류 업체에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실물을 보고 싶다는 의뢰를 받으면 직접 해외 배송으로 원단 샘플을 보내기도 한다.

IT조선은 서울 동대문 패브릭타임 사무실에서 이우석 패브릭타임 CTO를 만났다.

―사업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부인인 정연미 패브릭타임 대표와 프랑스 패션 학교 에스모드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친구를 만나러 자주 갔다. 프랑스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원단을 구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놀랐던 것은 이들이 원단 정보를 종이에 적고, 주문도 수기로 처리한다는 사실이었다.

의류는 잘 몰라도 전기정보공학 전공자로서 아날로그 영역을 보면 디지털화하려는 본능이 발동한다. 원단 정보와 유통 과정을 자동화하는 일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한국과 달리 원단 샘플 1개당 1달러 정도 돈을 받는다. 동대문에서는 원단 샘플을 무료로 나눠준다. 외국은 동대문처럼 의류 클러스터도 따로 없어 원단 샘플을 구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방문해야 한다. 해외 디자이너 또는 업체에 원단 정보를 DB화해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면 이들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2017년 10월 사업을 시작한 계기다.

―사업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미개척 분야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발로 뛰었다. 프랑스는 패션위크 주간이 있다. 이때 수많은 패션쇼와 원단 박람회가 열린다. 이곳에 직접 동대문에서 구한 원단 샘플을 들고 갔다. 디자이너와 브랜드 관계자 한명 한명에 다양한 원단 샘플을 보여주며 원단마켓플랫폼을 열면 방문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듣고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흥미로워하는 외국 디자이너들을 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서비스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혼자 개발을 담당하다 보니 밤샘 작업도 많았고 주문이 들어왔을 때는 원단 업계를 잘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주문을 넣으면 당연히 물건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무수한 변수가 있었다. 예컨대 원단에 염색 작업을 하면 미묘하게 원단 색이 달라진다거나 주문을 받고 보니 재고가 없는 경우 등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동관제시스템'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단 구매 과정을 약 70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원단 주문을 받으면 해외 배송으로 제품을 보낼 때까지 발생하는 수백 가지 변수를 시나리오화 했다. 변수를 만나면 어떤 액션을 취해야하는지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 작업을 거쳐 자동관제시스템을 2018년 6월에 완성, 원단마켓플랫폼을 열었다.

―‘스와치 온’은 무엇인가?

패브릭타임이 제공하는 원단 샘플을 ‘스와치'라고 부른다.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샘플을 직접 만져보고 작업계획서와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 정보를 입력한다.

스와치온 박스 / 패브릭타임 제공
스와치온 박스 / 패브릭타임 제공
패브릭타임 홈페이지에 올라간 원단 정보를 보고 디자이너들이 필요한 원단을 선택하면 스와치온 박스에 담아 해외 배송으로 보낸다.

패브릭타임 원단 정보 / 패브릭타임 홈페이지 갈무리
패브릭타임 원단 정보 / 패브릭타임 홈페이지 갈무리
같은 원단이라고 해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세부항목까지 카테고리화해서 홈페이지에 나열했다. 지금도 그 작업은 계속하는 중이다. 디테일한 원단 정보를 제공할수록 의류 제작의 폭이 넓어진다. 디자이너와 의류 업체의 반응이 좋다.

―패브릭타임만의 강점은?

원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이 아닌 유럽, 대형 업체가 아닌 개인이나 중소기업 등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외국 디자이너들은 원단 샘플을 받아 컬렉션에 나가기 위해 옷을 한 두벌 정도 만든다. 패션쇼가 끝나고 바이어들이 주문 의뢰를 하면 그 때 비로소 대량으로 원단을 주문하는 시스템이다.

큰 회사는 원단 수급에 문제가 없겠지만, 외국 디자이너들은 중소기업 대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 원단 시장 특성상 3개월~4개월이 지나면 시제품으로 만들었던 옷의 원단은 구할 수 없다. 동대문은 다르다.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도 같은 원단을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소량 구매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크게 어필한다.

―패브릭타임의 미래 전략은?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려고 한다. 원단을 염색할 때 오염물질이 많이 나온다.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원단으로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소비자에게 어필할 예정이다.

주력 시장인 유럽이나 북미도 지속가능한 제품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를 주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확고해지면 어떤 경쟁자도 따라올 수 없다고 믿는다.

―패브릭타임의 최종 목표는?

2017년 10월 창업 당시 6명 남짓이었던 직원은 이제 16명으로 늘었다. 스파크랩스, 카카오벤처스, 미래에셋벤처스, 두나무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로부터 총 30억원에 달하는 투자도 받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시즌을 구상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사이트가 패브릭타임이었으면 한다. 그들에게 "패션 시장은 패브릭타임 출범 전후로 나뉜다"는 평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