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법 개정안에 '진흥' 문구가 빠지는 것을 놓고 정부와 기업 간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문체부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이름을 개정하는 이유에 대해 법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게임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게임을 진흥이 아닌 규제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반발했다. 법 위반 시 해외 사업자에 대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국내 대리인 제도를 통해 해외 사업자에 대한 행정처분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이하 협회)는 18일 문체부에 제출한 게임산업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 기존 법의 이름을 게임사업법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기재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게임산업 진흥법을 게임사업법으로 이름을 바꾸려 하는데, 이는 문체부가 게임산업을 진흥의 대상이 아닌 규제·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 아니냐"고 반박했다.

◇ 66개 문체부 소관법 중 ‘게임’만 사업법으로 해서는 안돼

토론하는 서종희 건국대 교수(가운데)의 모습. / 오시영 기자
토론하는 서종희 건국대 교수(가운데)의 모습. / 오시영 기자
문체부 소관 66개 법률 중 진흥·지원에 관한 법은 41건 있고, 이외 15건의 기본법과 10건의 기타 법률이 있다. 게임진흥법을 사업법으로 바꿀 경우, 게임이 유일한 ‘사업법’ 법안이 된다.

협회 측은 "현행 사업법이라는 명칭을 가진 법으로는 철도·항도·항만 등 공공 부문이나 허가 등 규제 관련 법이 있다"며 "민간이 주체인 산업을 사업법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2019년 6월 2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발표한 경제활력대책회의 서비스산업 혁신전략을 근거로 들며 문체부의 법 개정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게임산업을 진흥과 육성이 필요한 산업으로 보고 자율규제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협회는 "게임 산업을 사업법으로 묶는 것은 현 정부의 공약이나 정책 기조와 결을 달리하는 조치다"라고 지적했다.

서종희 건국대학교 교수는 발제를 통해 법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진흥법이라고 해서 규제나 타법 관련 조항을 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게임산업법은 게임 산업의 ‘진흥’을 목표로 하는 진흥법 성격이 강하다"며 "진흥법에서 자율규제 관련 내용을 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 확률형 아이템 ‘정의’부터 재검토해야

확률형 아이템 규제 조항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이용자가 유료로 구매하는 게임 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 효과·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게임 업계는 해당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문화체육관광부 로고. / 각 기관 제공
한국게임산업협회, 문화체육관광부 로고. / 각 기관 제공
정정원 한양대학교 연구원(법학연구소)은 ‘다이아’ 같은 ‘확정적인’ 재화를 유료로 구매한 뒤, 이를 활용해 불확정적 아이템을 구매하는 경우, ‘파괴 보호 주문서’ 같이 아이템 자체는 확정적인 효과를 지녔으나 이를 활용하는 ‘아이템 강화’ 등 콘텐츠가 우연적인 경우 적용 범위가 모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병찬 변호사는 개정안을 만들더라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 아이템을 게임 진행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정리하는 조항 탓에 ‘애니팡’에서의 하트처럼 게임 진행 여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화나 합성 등의 확률을 공개할 방법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정원 연구원은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소비자 불만으로 인해 제기된 문제인 만큼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명확히 정하려면 무엇을 위해 정하는 것인지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서종희 교수는 "해외 사업자가 국내 대리인을 뒀다 해도 법 위반시 어떻게 해야하는지 법안에 전혀 안나타난다"며 "행정처분 규정을 명확히 정의해 유추해석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게임과몰입 예방은 ‘치료’ 조치?

개정안 중 게임과몰입의 예방 등(제 74조)이라는 조항도 이슈가 됐다. 법안에는 게임 과몰입, 사행성, 선정성, 폭력성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서종희 교수는 "‘과몰입’이라는 순화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좋지만, ‘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게임의 사행성, 선정성, 폭력성을 치료한다는 표현도 어색하다"고 말했다.

정정원 연구원은 "선정성은 음란과는 다르고, 음란물은 형법으로 제한하는 상황에서 성인에게 선정성을 제한하고 예방해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도 "소설에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이 등장하지만 이를 규제하지는 않는다"며 "과도한 폭력성, 선정성이 문제이므로 무턱대고 규제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하는 정정원 한양대 연구원(가운데) 모습. / 오시영 기자
토론하는 정정원 한양대 연구원(가운데) 모습. / 오시영 기자
◇ 자율규제와 정부규제의 어색한 동거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법에는 ‘자율규제를 권한다’는 문장이 있지만, 문장 하나 넣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부규제에 앞서 자율규제를 시행하겠다는 근거가 희박할 수 있다.

서종희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자율규제와 정부규제의 어색한 동거’라고 표현하며, 자유주의적 간섭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 자율규제와 정부규제가 혼용될 경우 자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정부가 컨트롤하는 모양이 된다"며 "자율규제가 정부규제를 감추는 연막탄의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약 개발사가 자율규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내용이 없다"며 "자율규제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조항보다는 기업이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조항을 넣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