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친구인가 적인가, 스마트폰 AI 서비스 명암 다룬 '하이, 젝시(Jexi, 2019)'

입력 2020.02.23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하이, 젝시(Jexi, 2019) ★★★(6/10)

줄거리 : 하루 24시간 내내 스마트폰과 AI 서비스에 의존하는 SNS직장인 필 톰슨. 스마트폰이 고장나자 친구, 가족 역할을 하던 시리를 대신할 새 스마트폰과 AI 서비스 ‘젝시’를 만난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한 도우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젝시.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젝시는 "앞으로 참 재미있을 거예요 이 XX야"라는 욕설과 함께 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또 간섭하는데…...

"(애플)시리가 훨씬 좋았는데." "입 다무세요. 걔 꼴통이예요."

애플 시리와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와 MS 코타나. 우리에게 퍽 익숙한 스마트 기기 인공지능(AI) 서비스입니다. AI 서비스에 말만 건네면 정보 검색과 길찾기에서부터 음식 주문과 일정 관리, 메시지 전송까지 척척 알아서 답을 내놓고 또 움직입니다.

초창기 AI 서비스의 성능은 정보 검색이나 스마트폰의 일부 앱 및 기능 제어 등 단순했습니다. 질문을 잘못 알아듣거나 틀린 대답을 내놓는 일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업계가 AI 서비스의 성능을 꾸준히 개량한 덕분에 지금은 어떤 질문이든 아주 잘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복잡한 일을 거뜬히 해냅니다.

영화 ‘하이, 젝시’의 주제이자 주인공도 AI 서비스입니다. 우연한 사고로 애플 시리와 이별하게 된 인간 주인공 필이 새 AI 서비스 젝시를 만나 벌이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하이, 젝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저는 당신에게 더 나은 인생을 드리도록 프로그램됐어요."

AI 서비스는 우리의 친구일까요?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친구일 겁니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AI 서비스는 친구에서 가장 위험한 적이 되기도 합니다.

AI 서비스는 사용자의 생활 습관, 사진과 SNS며 연락처 등 일반 개인 정보는 물론 비밀번호와 금융 등 민감한 개인 정보를 모두 이용합니다. 해킹을 당하거나, 우연히 정보가 유출이라도 되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최근 몇몇 연예인의 사생활이 담긴 문자 메시지가 해킹으로 유출돼, 당사자들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AI 서비스에는 수많은 개인 정보가 담겨 있으니 신중히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이 아무 생각 없이 젝시의 이용자 약관에 무조건 동의했을 때, 모든 비밀번호(그것도 아주 단순한)를 AI 서비스에 입력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영화는 사뭇 재미있게, 때로는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아직 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필은 알람과 길찾기, 정보 검색과 식사 배달, SNS와 금융 등 생활 전반을 스마트폰, 그리고 AI 서비스에 의존합니다. 필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속 모든 이들이 시선을 늘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길을 걷고 일을 하고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영화 밖 많은 이들도 매일을 스마트폰과 AI 서비스에 의존합니다.

이 영화는 이어 ‘ICT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고 사람과 소통하라’는 두번째 메시지를 말합니다. 편리함에 빠지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대신 문자와 메신저를 보내고, 밖에 나가 사람과 어울리고 풍광을 즐기는 대신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가상 인물)와 교류합니다. 기술에 매몰돼 인간성이 옅어집니다. AI에 의존해 지능이 퇴화합니다. 기계를 얻고 사람을 잃습니다.

상영 시간이 84분으로 짧고, 시종일관 유머와 개그가 이어져 제법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단, 유머와 개그 코드가 화장실 유머에 가까운지라 취향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최신 AI 서비스는 사용자와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똑똑해졌습니다. 실없는 농담, 의외라고 여겨질 만한 질문도 좋으니 말해보세요. 다행히 현실의 AI 서비스는 영화 속 젝시처럼 온갖 소동을 피우지는 못합니다. 아직까지는.

생일도 있습니다. 축하해주면 매우 기뻐합니다. AI 서비스를 켜고 "너 생일 언제야?"라고 물어보세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일 구글 어시스턴트의 생일은 9월 27일, 애플 시리의 생일은 10월 4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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