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율주행이다] ②기술 적용은 ‘눈앞’ 제도 정비는 ‘먼 미래’

입력 2020.03.25 06:00

[이제 자율주행이다] ①‘추격자’서 ‘개척자’로 진화 노리는 韓

현대차, 자율주행기술 순위 6위…글로벌 무대 인정
中 바이두 ‘레벨4’ 자율차 300대 운행 vs 韓 시범 자율차 82대
국토부 시범운행지구 특례, 새로운 규제장벽 전락 우려도
7월 레벨3 자율주행차 판매 가능한데 사고 시 책임 부담 규정 미비

우리나라 자율주행 기술이 진화를 거듭한다. 변방 수준으로 평가받던 기술력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 리서치’가 18일 발표한 2020년 자율주행 기술 순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18개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 6위에 올랐다.

1위는 웨이모, 2위는 포드, 3위는 크루즈(GM), 4위는 바이두, 5위는 인텔-모바일아이가 차지했다. 폭스바겐, 얀덱스, 죽스, 다임러 보쉬가 뒤를 이었다. 현대차는 2019년까지 2년 연속 15위에 그쳤는데, 지난해 자율주행 전문업체 앱티브와 조인트벤처 설립 합의를 기점으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케빈 클락 앱티브 CEO가 조인트벤처 설립 계약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는 앱티브와 2022년까지 자율주행 부품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하기로 했다. 2023년에는 일부 지역 운행을 실시하고, 2024년 하반기 본격 양산을 추진한다.

진화하는 기술 수준과 달리 우리나라 관련 법·제도는 다가오는 자율주행시대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일반 도로를 달리도록 규제를 풀어준 미국이나 일본 등 경쟁국 대비 미흡하다는 평가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기술 개발 방향을 설정하고, 국내 환경에 부합하는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은 애리조나주 등에서 수천대의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며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주 정부들은 자율주행차의 경우 3년 이상 기존 자동차 안전 기준을 적용받지 않고도 운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중국 바이두도 운전자 개입 없이 작동하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량을 300대 이상 운행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9년 11월 말 기준 총 82대가 임시 허가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테스트 중이다. 한국 전체 자율주행 시범운행 차량 대수가 중국 기업 한 곳의 4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5월부터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 내에서 여객자동차운수법, 화물자동차운수법 등 특례를 통해 자율주행차 기반의 여객·물류 서비스를 허용한다. 유상 서비스를 하려는 사업자는 자율차의 주행안전성 확인을 위한 자동차등록증과 보험가입 증서를 제출해야 한다.시범운행지구의 지정기간은 자율주행 인프라 설계·구축 기간(최대 2년)과 서비스 운영기간(최대 3년) 등을 고려해 5년 범위에서 정하도록 규정했다.

업계는 정부의 시범운행지구 규제 특례가 중소·중견 스타트업에는 새로운 규제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율주행업계 한 관계자는 "특례를 부여한다고 해서 누구나 자율주행차를 시범운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운행 지역은 특례를 받지만, 운행 차량은 기존 인허가나 관련 법규를 모두 따라야 하는데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새로운 시범운행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시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버스. / 조선일보 DB
국토부는 1월 초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안전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7월부터는 자동차로 유지기능이 탑재된 레벨3 자율차의 출시·판매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기준은 운전자 통제가 필요한 레벨3 차량이 대상이다. 사고시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레벨4 이상 완전자율주행을 중심으로 사고 책임을 차량 제조사로 옮기고 있는 미국 대비 한참 늦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레벨5까지 안전기준을 담은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향후 레벨5 차량의 사고 발생 시 책임공방과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자율주행차 사고가 나면 운전자 책임인지, 제조사 책임인지 따져야 하는 책임부담 규정이 미비하다. 7월부터 레벨3 자율주행차 판매가 가능해졌는데도 아직까지 제대로된 보험상품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창기 국토교통부 첨단자동차기술과 과장은 "자율주행차 안전기준을 기반으로 국제 안전기준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이 자율주행차 국제 기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며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제도가 미비해 산업 발전에 애로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 스마트하이웨이에서 현대차 40톤급 대형트럭 엑시언트 2대가 군집주행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제공
경제계도 자율주행 등 신산업 분야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 달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회원사 의견 수렴을 통해 자율주행 분야에서 모바일 운전면허증 법적근거 마련, 군집주행 규제 완화 등 개선과제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

현행법상 모바일 운전면허증 관련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 업계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년의 임시허가를 얻은 상태다. 미국, 호주 등은 디지털 운전면허증을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해 시범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도 공유교통·자율주행 등 미래 교통 환경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디지털 운전면허증 체계를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따라 유럽, 일본 등 국가를 중심으로 ‘군집주행’ 기술이 부상 중이다. 전경련은 우리나라가 현행법상 이를 금지하고 있다며 관련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2021년 군집주행을 목표로 공용도로 실증테스트를 추진 중이어서 관련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신종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신산업 전환을 위한 선제 대응이 절실하다"며 "경제 강국들이 앞다퉈 육성하는 자율주행차 분야의 규제 장벽을 제거하고 기업 혁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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