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몰매 맞는 '리얼돌', 美·日·유럽선 '팝컬처'

입력 2020.05.23 06:00

리얼돌' 논란이 뜨겁다.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를 하게 된 FC서울구단은 관중석에 응원 용도로 리얼돌을 동원했다가 지탄을 받았다. 구단이 사과까지 했어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프로축구 연맹으로부터 1억원의 벌금 징계까지 얻어맞았다.

FC서울 응원석에 설치된 리얼돌 / TV조선
어린이 팬까지 고려하지 않은 구단에게 분명 잘못은 있다. 하지만 외국과 달리 리얼돌을 오로지 성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한국의 좁은 시야도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리얼돌이 단순한 ‘섹스 도구'를 넘어 ‘취미 상품'과 ‘팝 컬처'로 넘어간다.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과 논쟁 역시 ‘여성의 성 상품화’ 단계에 머문 우리나라보다 한단계 더 나아갔다. 인종차별부터 성범죄 예방 여부, 심지어 매춘 여성 일자리 걱정까지 논쟁 주제는 다양하고 깊다. AI 도입과 리얼돌 보급 확대와 더불어 개인 프라이버시 노출 문제가 부쩍 부각됐다.

전반적으로 역기능보다 순기능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성범죄부터 인간소외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책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극심한 ‘여성의 성 상품화’ 논란은 해외에선 사실상 논쟁거리도 아니다. 이미 지난 논쟁이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 리얼돌 시장에 최근 여성 소비자 진입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다. 리얼돌에 대한 인식이 확실이 한국과는 다르다. 이참에 우리나라도 리얼돌을 양지로 끌어올려 순기능과 역기능을 두루 살펴보고 대안도 찾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AI로 진화하는 리얼돌

리얼돌은 엄밀하게 따지면 ‘섹스돌' 상품에 속한다. 처음부터 ‘성욕구 해결’이라는 목적 아래 만들어졌으며 이 용도는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는 ‘섹스돌(Sex Dolls)’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됐다.

‘섹스’란 단어를 공개적으로 꺼내는 것을 꺼리는 한구에서는 ‘리얼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상품의 순 기능보다 부정적 시선이 워낙 커 관련 업계는 물론 소비자도 ‘섹스돌'보다 순화한 ‘리얼돌'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리엔트공업이 만든 리얼돌 / 오리엔트공업
외국은 한국과 달리 성(性)산업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이고 규제도 덜하다. 섹스돌 역사도 멀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갈만큼 깊다. 장애인 등 성욕구를 풀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 용도로도 사용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과 같이 섹스돌에 대한 거부감은 적은 편이다.

‘리얼돌’이란 말은 미국의 어비스크리에이션스(Abyss Creations)가 탄생시킨 단어이자 상표다. 이 회사는 실리콘 소재로 실제 사람에 가까운 섹스돌을 만드는 것으로 새로운 ‘섹스토이’ 상품 카테고리를 창조했다.

AI탑재 리얼돌 ‘하모니' / 텔레그래프
리얼돌은 25년간 진화를 거듭해 내부 골격을 갖추고 피부도 의학용 실리콘 재질로 외견상으로는 실제 인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최근엔 인공지능(AI)까지 접목해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은 AI탑재 리얼돌을 7000위안(121만원)에 선보이는 등 리얼돌 보급의 걸림돌인 가격 문제까지 해결했다.

리얼돌의 다음 진화 단계는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이 목표에 도달한다면 섹스돌은 더 이상 성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파트너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美·日에선 취미 아이템으로 정착
큰 캐릭터 피규어로 인정받아

리얼돌을 성인용품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이제 편협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일본 등지에서는 수십년이 흐르며 개인의 취미 아이템으로 탈바꿈했다. 예술 분야에 활용되는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의 한 예술가는 자신의 모습을 빼 닮은 리얼돌을 이용해 마치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를 연상시키는 사진 작품을 선보였다.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은 ‘리얼돌은 태아의 꿈을 꾸는가?’라는 사진전을 통해 본래 리얼돌이 가진 섹슈얼리티가 상실되고 모성을 강조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리얼돌을 캐릭터 피규어나 인형처럼 취미 용도로 구입해 사용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취미용으로 리얼돌을 구입한 사람들은 성적 도구가 아닌 일종의 장식품 혹은 수집 아이템으로 여긴다.

라이프 사이즈 실리콘 소재 액션 피규어 ‘베리' / 오리엔트공업
일본 대표 리얼돌 제조사 오리엔트공업은 연초 ‘베리(Berry)’라는 이름의 피규어를 선보였다. 베리는 보통 사람의 크기와 같은 액션 피규어다. 리얼돌 제조사가 취미용 아이템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관련 시장의 수요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베리의 키는 130㎝며 외모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할 법한 소녀 캐릭터 모습이다. 베리는 기존 모형 시장에서 등장했던 사람 크기에 고정된 자세로 만들어진 라이프 사이즈 피규어와 달리, 몸을 움직여 다채로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제품이다. 사람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거나 눈동자와 가발을 바꿀 수 있는 등 나만의 캐릭터로 재구성될 수 있다.

베리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구체관절 인형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고 옷을 갈아 입히는 등 인형을 꾸미는 재미를 6분의 1 크기가 아닌 1대 1 크기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인 셈이다. 제조사가 늘어나고 가격이 인하된다면 또 다른 취미 상품 마켓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인생 파트너 지위까지 오른 리얼돌
장례식 서비스도 등장

일본에서 리얼돌은 일부 마니아를 중심으로 섹스 용도가 아닌 인생의 파트너 역할을 한다. 차를 함께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풍경이 좋은 곳에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들에게 리얼돌은 도구가 아닌 파트너이자 친구다.

홋카이도에서 활동하는 한 리얼돌 전문 사진 작가에 따르면 이들 마니아 중에는 자신의 리얼돌과 단 한 번도 성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리얼돌 마니아이면서도 현실 속 아내와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첫 AI탑재 리얼돌을 만든 WM돌은 광명일보 등 현지 매체를 통해 "쓰고 버리는 성도구가 아닌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인생의 파트너로서 리얼돌을 찾는 중국인 남성이 증가한다"고 평가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중국 리얼돌 시장은 2018년 기준 100억위안(1조7306억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파손된 리얼돌을 위한 장례식 서비스도 등장했다. 소유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리얼돌을 해체한다. 스님을 불러 실제 인간처럼 장례식을 진행할 수도 있다. 리얼돌 장례식 업체가 20대 이상 리얼돌 사용자 2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절반쯤에 해당하는 46.8%가 리얼돌 장례식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리얼돌에 로맨스를 추구하는 남성이 증가 추세다. 이들에게 리얼돌은 연인이자, 자신의 마음을 달래주는 존재다. 리얼돌 마니아인 오자키 마사유키씨는 AFP 인터뷰를 통해 "리얼돌은 나에게 있어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양대 업체 美 어비스와 日 오리엔트공업
중국업체 가격경쟁력 앞세워 맹추격

‘리얼돌'이란 상품을 내놓고 시장을 선도한 기업은 어비스크리에이션스다. 1994년 골격을 갖춘 사람 크기 ‘마네킨’을 만들었고 이 경험을 살려 지속적인 시장 개척으로 글로벌 회사로 거듭났다.

어비스는 주문생산 방식으로 리얼돌을 제작한다. 여성형, 남성형 선택이 가능하고 체격과 얼굴 등 구매자가 리얼돌의 외모를 결정할 수 있다. 가격은 6000~1만달러(735만원~1200만원) 수준이다. 회사는 2009년부터 리얼돌 피부 소재로 의료용 실리콘을 사용해 실제 사람 피부에 가깝게 만든다.

신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모터를 인형 내부에 내장해 신체 일부를 움직이게 하거나 실제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기술을 리얼돌에 탑재했다. 최근에는 3D스캔 기술로 모델의 피부 혈관도 재현하는 등 리얼돌이 마치 사람인 것과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오리엔트공업이 만든 최고 품질 리얼돌 ‘야스라기 쯔야(艶)’ 라인업 ‘아오이'. / 오리엔트공업
일본 오리엔트공업은 어비스보다 훨씬 더 앞선 1977년 창업했다. 장애인의 성욕구 해결을 위해 만든 공기인형 ‘더치와이프(DutchWife)’를 만든 것이 현재 리얼돌 개발로 이어졌다.

오리엔트공업은 1982년 발포우레탄에 라텍스를 입힌 마네킨에 가까운 초기 리얼돌 ‘오모카게'를 선보였다. 1987년에는 신체 일부에 관절부품을 더한 ‘카게미'를 출시했다. 1997년에는 소프트비닐 소재를 이용해 현재의 리얼돌에 가까운 ‘아스카'를 선보인다.

오리엔트공업이 인형에 실리콘 소재 적용한 것은 2001년이다. 오리엔트공업은 어비스가 만든 리얼돌의 인기를 지켜본 뒤, 축적된 조형 기술을 바탕으로 실리콘 소재 리얼돌 ‘앨리스'를 발표했다. 140㎝ 크기의 소녀 모습인 앨리스는 56만엔(639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20분만에 120건의 주문이 밀려들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 회사는 당시 50개 판매를 눈앞에 두고 생산체제를 정비했으나, 예상보다 많은 주문으로 3개월간 주문 접수를 중지했다. 3개월 뒤 시작된 2차 주문에서도 100건 이상의 주문이 들어왔다,

오리엔트공업은 앨리스의 폭발적인 인기를 발판 삼아 다채로운 실리콘 소재 리얼돌 개발에 나섰다. 3D 스캔 기술을 채용했을 뿐 아니라 손가락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골격 프레임을 채용하는 등 미국 리얼돌의 디테일을 넘어 실제 사람에 가까운 실리콘 인형을 선보이는 중이다.

WM돌을 필두로 한 중국업체들은 품질 수준이 미국과 일본업체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추격하고 있다. 중국업체 가세로 향후 가격경쟁이 불붙고 보급 확대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리얼돌 수요는 날로 개인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FC서울구단의 이번 리얼돌 동원은 달리 보면 한국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서 논란을 빚자 ESPN을 비롯한 해외 수많은 매체들이 이를 보도했다. ‘한국에서 리얼돌 논란이 인다’는 내용이 주류다. 그런데 해외 매체는 물론이고 독자들도 우리와 같은 비판보다는 ‘엉뚱한 곳에 등장해 재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리얼돌에 대한 외국과 한국의 다른 관점과 접근이 여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


IT조선은 6월 2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는 클라우드를 살펴볼 수 있는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 IT조선
키워드